성소 씨앗 뿌리내리도록… 공동체성·인문학 함양 등 다양한 접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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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교구 성소국장 정재호 신부가 예비신학생들과 경당에서 기도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부르는 부활 제4주일은 사제와 수도자, 선교 성소의 증진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성소 주일이다. 예비 신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운영하며 성소 계발에 힘쓰는 의정부교구와 제주교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의정부교구 ‘너나들이’
‘너나들이.’ 너와 내가 격식 없이, 허물없이 지낸다는 뜻의 너나들이는 의정부교구 예비신학생 모임 이름이다. 의정부교구 성소국(국장 정재호 신부)은 3월 20일 너나들이 모임을 시작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된 응답을 하기 위해서다.
교구 내 예비신학생 모임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또한, 기존의 예비신학생 모임과 차별화된 전략도 필요했다.
2020년 2월 성소국장으로 부임한 정재호 신부<사진>는 8월부터 너나들이 모임을 계획했다. 먼저 아이들이 지낼 공간이 필요했다. 정 신부는 교구로부터 사회사목국이 사용하던 건물(의정부시 녹양동 소재)의 사용허가를 받아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고쳤다. 건물 1층에는 경당을 만들었고, 나머지 층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너나들이 모임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된다. 토요일은 오전 9시 30분~오후 8시 30분, 주일은 오전 9시 30분~오후 5시까지다. 정 신부는 “학생들의 성적 향상, 그리고 성적 향상을 통해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8명의 봉사자가 학습을 도와주고 있다. 학습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대면과 비대면을 병행하며 진행한다. 비대면의 경우에는 봉사자들이 SNS를 통해 문제지를 보내고 학생들이 답문을 보내면 필요한 부분은 동영상 강의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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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생활이 공동체 생활인만큼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목적도 있다. 정 신부는 “요즘 아이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만큼 함께 기도하고 식사하며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는 취지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학생들이 기성세대와 사고방식,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정 신부를 비롯해 양성자 신부와 식별자 신부가 항상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고 소통한다. 학생들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분들을 둥글게 깎아 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정 신부는 다만 성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가정에서의 신앙심 약화와 청소년기의 신앙생활 공백이 성소자 감소의 직격탄”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신앙심 약화와 주일학교 공백, 입시에 빼앗긴 시간 등이 성소자 감소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정 신부는 “성소 계발을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신앙생활이 이뤄지도록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소년기 신앙생활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공부방 형태와 같은 지금과는 다른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등 청소년들이 신앙을 잃지 않고 생활하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신부는 “교회가 비어 간다는 것은 성소의 위기이고 성소의 위기는 곧 교회의 위기”라고 말했다. 교회가 빈다는 것은 성소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정 신부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사제 성소자 양성에 책임이 있다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나와 있다”며 “사제 성소자 양성에 모든 평신도와 사제, 수도자가 한마음 한몸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제 성소자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재원과 노력, 인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비신학생 장성욱(고3, 시몬, 진건본당)군은 “예수님처럼 모두를 사랑하는 사제가 되고 싶다”며 “사제가 되면 노인과 장애인들처럼 약자들을 돕는 데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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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교구 예비신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고등학생들이 성소위원장이자 기숙사 관장인 김영일 신부와 함께 아침 기도를 바치고 있다. 김영일 신부 제공 |
제주교구 '스페스 학교'
제주교구 ‘스페스 학교’제주교구에는 예비신학생 모임으로 ‘희망학교’라 불리는 스페스 학교와 예비신학생 기숙사가 있다.
교구 성소위원회(위원장 김영일 신부)는 2014년 예비신학생 모임을 없애고, 스페스 학교를 시작했다. 스페스(SPES)는 라틴어로 Sanctitas(성덕)ㆍPrudentia(신중함)ㆍEvangelium(복음)ㆍScientia(지식)의 첫 글자를 모은 것으로, ‘희망’이라는 뜻도 지닌다. 성소자들은 항상 △성령의 이끄심을 삶의 중심에 두고 △복음을 읽고 실천하며 △자신의 삶을 살핌으로써 자신의 성소를 신중하게 식별하고 △올바른 교리를 익히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제주교구의 성소 사목은 사제 성소를 지닌 예비 신학생들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부터 35살 미만의 청년까지 모든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자신이 받은 은사에 응답하도록 동반한다. 모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보편 성소를 확장하고, 그중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의 씨앗을 지닌 이들은 따로 분별해 성소를 키울 수 있게 돕는다. 또, 삶의 터전인 제주 지역의 자연과 역사, 향토 문화에 대한 배움을 통해 토착 성소를 육성한다.
스페스 학교에는 ‘신학의 예비과정으로서 인문학’을 바탕으로, 매달 한 번씩 ‘참된 인간적 자질과 교양’을 익히는 나눔과 배움의 자리가 마련돼있다. 신학교 지원반을 포함해 학년별로 5개 반(뿌리ㆍ줄기ㆍ고3ㆍ일반)으로 구성돼있다. 공동선과 형제애를 기르고, 성실과 선의, 창의력과 추진력, 맡겨진 임무에 대한 책임감 등을 기른다. 이 기간에 성소의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성소의 뿌리를 탐색하는 것이다. 올 3월 스페스학교 개강 미사에는 103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성소위원장 김영일 신부는 “성소는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시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며 “보편적 성소를 확장하고, 제주교구 안에서 하느님 뜻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중에는 사제 성소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 신학교 입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생활하는 ‘예비신학생 기숙사’(제주시 서광로소재)도 있다. 사제 성소의 씨앗을 발견한 고등학생들이 소공동체로 모여 기도하고 공부하며, 미리 신학교 생활과 비슷한 과정을 몸에 익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본당 사제의 추천서와 지원서를 통해 기숙사에 입사하는 학생들은 평일에 기숙사에서 단체 생활을 하고 주말에 집에 다녀온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에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학교에 다녀온 이후에는 운동과 독서, 기도 및 성찰 시간을 갖는다. 영적 일기 쓰기와 복음 나눔을 하는 시간도 있다. 정규 수업 외에 보충 학습이 필요하면 학원을 따로 다니기도 한다. 설거지와 빨래는 물론, 청소도 같이 하면서 공동체성을 기른다. 현재 기숙사에는 4명의 고등학생이 김영일 신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성소위원장으로 기숙사 관장을 겸하고 있는 김영일 신부는 “매일 일찍 일어나 같이 미사를 드리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생활이 만만치 않은데 기특하다”면서 “복음 나눔 및 영적 일기 쓰기 등을 통해 서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를 열고 듣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구 성소위원회 담당 안자영(테라, 툿찡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수녀는 “요즘 시대의 성소 육성은 사제와 수도자뿐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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