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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늙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가지 않은 길 앞에 울림되길”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1-04-09 조회수 : 613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가지 않은 길 앞에 울림되길”

인제 출신 한수산 소설가 인터뷰
나이테 매듭 별로 풀어 낸 젊은날의 표상
벤치마킹 할 모델 없는 늙음이 저의 노년
몸 건강을 사회적 가치로 못 잇는 현실
천주교 순교사 소재 작품 위해 자료 섭렵
글쓰기는 첫 줄부터 쓸 필요 없어…

▲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을 펴낸 한수산 작가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을 펴낸 한수산 작가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미학적이고 감각적인 문체,철저한 취재로 한국 근현대사를 짚어온 한수산 소설가가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을 펴냈다.베스트셀러 ‘부초’,일제시대 조선인 징용사를 30여년에 걸쳐 복원한 ‘군함도’ 등의 소설을 써 온 작가가 글로 그린 자화상이다.

인제 출신으로 춘천에서 자란 작가는 자신의 청춘을 되짚는 동시에 차갑고 각박한 시대를 넘고 있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전하기 위해 이번 책을 썼다고 했다.산문 에세이인만큼 역사 속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보이지만,“벤치마킹할 모델 없는 늙음을 맞았다”고 말하는 작가의 고민은 시대적 과제와 여전히 맞닿아 있다.강원도민일보는 한 소설가와 서면 인터뷰를 갖고 이번 산문집과 그의 속 이야기를 들었다.인터뷰에는 소설로 돌아가기 위해 그가 취재하고 있는 것들,천주교 순교사를 소재로 한 차기작에 대한 힌트와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쓰기 팁도 들어있다.

-산문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출간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도 어느새 일흔을 넘긴 나이에 서 있습니다.언론으로부터 ‘감성의 작가’라고 불리던 때가 어제 같은데 세월의 물결에 실려 여기까지 와 있나 봅니다.작가들의 입장이나 글들까지 정치에 휘둘리고 이념이나 진영에 매몰되어 버린 세태를 바라보며,이런 글이나 책이 ‘오늘의 한국’ 어디에 설 자리가 있을 것인가,책을 내면서 그런 생각부터 지울 수가 없습니다.젊은 날 내 영혼에 표상이 되었던 예술가들과 스승,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각박한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어떤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으려고 했습니다.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내 영혼이 자라던 나이테에 하나씩 매듭이 지어지던 지난 날,거기 무엇이 있었던가.소년시절부터 대학 때까지의 은사들을 이야기하고 그때 꿈꾸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적어나가면서 그들이 내 젊은 날에 만들어준 흔적을 통해 나를 이렇게 살게 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금박양장의 그리움이나 돋보기를 쓰고 바라보는 회고가 아니라 그러한 만남들이 어떻게 내 가슴에 와서 무엇이 되었으며, 어떻게 살게 했던가를 더 잊기 전에 기록해 두자는 생각에서 쓴 글들입니다.”

-서재 ‘영하당’에 대한 얘기가 재밌습니다.그 곳은 어디이며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영하당’은 4대강사업의 시발점인 이포보의 불빛이 바라보이는 남한강 옆에 있습니다.강물이 휘돌아가는 것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지요.거기서 장편 ‘군함도’의 전신인 ‘까마귀’를 썼습니다.생활공간과 책과 자료가 있는 서고와 서재가 있는 집입니다.”

-최근 관심있는 문제,취재중인 분야가 있는지요.

=“늙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어요.삶의 어느 것 하나도 첫 경험이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만,벤치마킹을 할 모델이 없는 늙음이 제가 맞고 있는 노년입니다.의료의 발달과 보편화로 몸의 건강은 왕성합니다만 그 건강이 사회적 가치와 노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준비하는 작품으로는,종교소설이 아닌 천주교 순교사를 그린 작품은 해외취재까지 마친 상태입니다.1800년대 중반의 관련자료 섭렵도 끝냈고요.내가 쓸 거룩한 인물들의 장엄한 삶에 하루하루 감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이라는 제목처럼 산문집은 이별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그것이 옛 스승일 수도 있고 여행지 일 수도 있습니다.또 지나온 청춘일 수도 있겠지요.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이별을 자주 맞이하고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이별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모든 끝은 그리고 헤어짐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입니다.언젠가는 저도 떠나야 하는 곳이 이 존재의 터전이 아닌가요.그렇게 우리도 헤어져야 합니다.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했던 모든 것과의 절대 이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청춘은 다 자신의 시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느낀다며 위로할 수 있게 되었을 때,나는 어느새 낡은 중년이 되어 있었다” 는 구절이 인상깊습니다.극작가를 꿈꿨고,필화사건까지 겪으신 작가님은 청춘은 늘 ‘상처’였다고 말합니다. 청춘은 어떤 시절이었나요.

=“춘천에서 보낸 내 청춘은 외롭고,좁고,가난했습니다.읽을 것이 없던 궁핍,세계문학전집이 처음 나오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시절입니다.좁은 땅덩어리가 주던 외로움,기차를 타도 멀리 가야 서울이고,호연지기를 기를 곳이라곤 대룡산 올라가는 것이 전부였어요.그래도 좋은 은사들을 만나 큰 가르침을 받았으니,젊은 시절의 제일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요즈음 청소년들,안타깝지요.스승의 날 행사조차 못하는 이건 학교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닙니다.”


-풍경화처럼 읽히는 작가님 특유의 미학적 문체를 보고 글쓰기 과정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책에서도 일부를 비워두고 ‘글은 고쳐쓰는 것이다’고 하셨는데 작가님만의 글쓰기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신 다면요.

=“글만 쓰는 헌 노트북을 하나 싼값에 마련하는 것,그것이 글쓰기의 첫걸음입니다.젊은 여러분들은 워드세대입니다.편집이 가능하니까 첫줄부터 써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글의 맨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겠다’ 생각나면 그것부터 써 놓으셔도 되는 게 워드프로세서니까요.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생각나는 것들을 글로 적는 것,글의 습관화도 중요하지요.뭘 쓸까 하고 치통 앓는 포즈로 아무리 앉아 있어도 글은 나오지 않습니다.문장수련의 하나로,자신이 좋아하는 남의 글을 베껴 써 보세요.이건 다른 나라 작가들도 하는 문장수련법입니다.단 번역책을 베껴 쓰진 마세요.한국최대의 악문은 번역책들이니까 오히려 독이 됩니다.”


◇프로필
1946년생.인제.춘천고.경희대 영문과.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사월의 끝’ 당선.장편소설 ‘부초’,‘유민’,‘푸른 수첩’,‘말 탄 자는 지나가다’,‘욕망의 거리’,‘군함도’ 등.오늘의작가상,현대문학상,가톨릭문학상,녹원문학상 등 수상.


강원도민일보 원문보기: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68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