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김치 씹는 소리만 들리던 어느 식사
산마루공동체의 식사 후 풍경.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다. /산마루공동체 제공
“아삭, 아삭, 아삭...”
지난 2월말 강원 평창 산마루공동체를 취재하던 중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서울서 자동차를 운전해 현지에 도착한 시간은 마침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이주연 목사는 “점심 식사부터 하자”고 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는 모두 7명. 식탁엔 밥, 미역국, 제육볶음, 바지락젓갈, 깻잎무침, 김치가 놓였습니다. 이주연 목사가 설명하더군요. “우리 공동체는 식전 기도는 수도(修道)하는 형제가, 식후 기도는 제가 합니다. 그리고 밥을 먹을 때는 먹는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서 대화하지 않습니다. 대화는 식후에 합니다.” 식전 기도 후 식사가 시작됐습니다. 정말 김치 씹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 귀엔 제 입에서 씹히는 김치 소리와 다른 사람이 씹는 김치 소리 뿐이었습니다. 가끔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릴 뿐이었지요.
이 공동체 식사 땐 또 한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밥과 반찬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했던 것은 1인분씩 자기가 먹을 양을 떠온 것이 아니라 함께 먹는 반찬을 어떻게 남기지 않고 먹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진행될수록 김치 씹는 소리보다는 반찬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눈길이 갔습니다. 공동체엔 젊은 목회자와 신학생도 있었지요. 식성 좋을 나이지요. 무심코 반찬을 향하던 젓가락도 멈칫하게 되더군요. 내가 많이 먹음으로써 다른 이들이 못 먹게 될까 싶은 걱정이었지요.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나니 올 클리어(All Clear)! 모든 이의 밥그릇, 국그릇과 반찬접시가 싹 비워져 있었습니다. 막판엔 약간의 혼란(?)도 있었습니다. 다들 아껴 먹다보니 제육볶음이 좀 남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좀 더 먹어야 하나?’ 싶을 즈음 젊은이들이 알아서 해치우더군요. 무언 중에 서로를 배려한 결과이지요. ‘기도와 노동’을 가치로 하는 이 공동체에선 이렇게 식사시간까지도 먹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은 교제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영성을 수련하는 공동체는 식사까지도 뭔가 달랐던 것이지요. 이주연 목사는 “베네딕도수도원 등의 규칙을 참고해 공동체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종교 공동체의 식사는 일반 사회의 식사와 많이 다릅니다. 이 목사가 모델로 참고한 베네딕토수도원 등 천주교 수도원 역시 식사 시간엔 침묵합니다. 한국에선 경북 왜관 성베네딕도왜관수도원이 ‘기도와 노동’으로 유명하지요. 그러나 이 수도원엔 ‘봉쇄 구역’이 있습니다. 저도 10여년 전 왜관수도원에 부활절 피정 취재를 다녀온 적은 있지만 수도자들의 식사 장면을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수도원 류지영 부원장 수사께 전화를 드려 문의했습니다. 류 부원장의 답변은 “식사땐 침묵”이란 것이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풍경이 조금씩 다르긴 하더군요. 아침엔 뷔페식으로 각자 먹을만큼 떠서 먹는다고 하더군요. 점심과 저녁엔 ‘영적(靈的) 독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식사 때엔 식복사 3명이 70여명 수도자들의 식사를 돕는 중에 한 명이 ‘영적 독서’를 읽는다지요. 이때 읽는 책은 반드시 성경은 아니고 수도자들의 수도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골라서 읽는다고 합니다. 식사 시간은 대략 25분 정도이고요. 물론 식사 시간엔 ‘침묵’입니다. 침묵하며 식사하는 중에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이유에 대해 류 부원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식사는 육체의 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도생활은 모든 시간에 영적 건강을 생각합니다. 식사 시간의 영적 독서는 육체적 건강과 영적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과정입니다.” 베네딕토회 식복사들의 임무는 다른 수도자들의 식사가 끝난 후 정리와 남은 반찬 정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잔반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각자 먹을만큼만 떠와서 거의 다 먹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스님들의 전통 식사법인 발우공양 모습. 모든 그릇이 깨끗이 비워져 있다. /조계종 제공
불교의 식사도 일반적인 식사와는 다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발우공양입니다. ‘발우’는 ‘바루’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내용은 같습니다. 각각 크기가 다른 나무 그릇 4개를 포갠 세트가 발우입니다. 이 4개의 그릇에 밥과 국, 반찬, 물을 담습니다. 그리고 “이 음식이 온 곳과 그 공덕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보고 공양을 받기에 자기 덕행이 완전한지 부족한지 헤아려 보라. 마음을 다스려 탐욕 등의 허물을 벗어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 양약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몸을 치료하는 약으로 여겨 도업을 이루기 위하여 이 음식을 받아야 한다”는 구절을 외고 음식을 먹지요.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불교식 발우공양을 경험해 본 분이 많을 겁니다.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발우공양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김치 한 조각’ 혹은 ‘단무지 한 조각’입니다. 김치와 단무지의 용도는 ‘설거지’입니다. 국은 액체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아무리 열심히 긁어 먹어도 밥그릇과 반찬그릇은 어쩔 수 없이 음식이 묻어납니다. 이때 물을 묻힌 김치와 단무지로 그릇을 닦으면 깨끗해집니다. 그 후에 빈그릇을 천으로 닦아서 다시 보관하면 ‘설거지 끝'입니다.
한때 ‘빈 그릇 운동’이 있었습니다. 밥, 반찬 남기지 말자는 운동이었지요. 요즘도 식당에는 ‘반찬은 셀프, 먹을만큼만, 남기지 마세요' 등의 문구를 볼 수 있지요. 사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운동은 필요 없었습니다. 밥이나 반찬을 남기면 바로 밥상머리에서 야단 맞았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절집(사찰)에서는 큰스님이 수챗구멍에 콩나물 대가리 걸린 것을 보고 호통을 치셨다는 이야기도 많지요. 요즘은 사찰에서도 이런 이야기하면 ‘꼰대’ 취급 받는답니다. 절대적 궁핍이 없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전설처럼 여겨지는 이야기입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풍요로워진 요즘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언제나 ‘빈 그릇’ 정신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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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원문보기: https://www.chosun.com/culture-life/relion-academia/2021/03/17/YEZTGIPYVFFP3PQBQIDNXVON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