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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방송[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자살인가 타살인가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0-11-12 조회수 : 247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자살인가 타살인가

2020.11.12 00:25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요즘 젊은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렇게 극단적 선택을 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몰인정하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던진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지, 왜 죽어?’부터 ‘독한 것들이 자살하는 거야.’ 하면서 남 말 하듯이 한다. 심지어 ‘자살자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기도해주어야 소용없으니 기도하지 말라’는 등 잔인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진상 종교인들도 적지 않다. 그런 말을 듣는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더해 더 큰 상처를 입는 이중고를 치러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유리 멘탈’
무심코 한 말에 상처 입어
경청해줘야 상처 치유돼

그래서 지면을 빌려 극단적 선택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용어부터 재고해야 한다. 자살이란 용어가 혐오스럽다고 ‘극단적 선택’이란 말로 바꿨나 본데, 너무 잔망스럽다. 자살은 자신이 자신을 죽였다는 것이고, 극단적 선택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란 의미다. 두 가지 용어가 모두 죽은 사람의 문제이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면피의 의미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살이란 없다. 타살만 있을 뿐이다. 범죄 사건처럼 한 사람이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익명의 다수가 자살을 방조했다는 말이다. 그 다수가 바로 우리들이다.
 
사람이 자살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해 나는 책임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살 방조의 원인이다. 사람이 죽어도 아무 느낌이 없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란 사고방식이 사회를 황량하게 만들고 심리적 소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두 번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문화, 차별 문화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외적 조건만으로 스스로를 귀족화하는 천민 문화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가 가난한 집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멀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집값에 집착해서 사람을 무시하다 못해 장벽마저 쌓고, 마치 나환자 대하듯이 한다. 이런 천민 문화가 귀족 문화로 둔갑해서 우리 사회를 시궁창으로 만들고 있다. 흉기로 사람을 죽이는 자만이 살인범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생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천민 문화 양산자들도 살인자들인 것이다. 이런 천민 문화가 사라져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감소할 것이다.

속풀이처방 11/12

속풀이처방 11/12



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특징을 상식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다. 오히려 ‘유리 멘탈’이라는 말처럼 여리고 약하다. 누군가 무심히 던진 말에도 죽을 것 같은 아픔과 상처를 입는 것이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편견 어린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약하디약한 마음의 상처는 약으로 치유가 안 되고, 누군가가 경청하고 공감해주어야 치유가 된다. 몸 안의 안 좋은 것들을 배설해야 건강해지듯이 마음 안의 배설물들도 해소를 해야 하는데, 이것은 누군가가 들어주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에서 자살예방센터와 상담방송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한 사람이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여러 사람의 발걸음을 돌아서게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관계망이 촘촘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인적 관계망이 허술하거나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본 시골집들은 집 주변에 대나무를 많이 심는다. 지진이 일어나서 집이 가라앉으려고 할 때 대나무들의 얽히고설킨 뿌리들이 집을 받쳐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어떤 종교라도 좋으니 종교를 갖는 것이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의 의지는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다. 작은 일에도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영성가는 인생을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람은 이렇게 약하기에 의지할 수 있는 신적 대상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 안은 여러 가지 소리들로 복잡하다. 그런데 그 소리들이 다 좋은 소리가 아니고, 어떤 것들은 사람을 궁지로 몰기도 한다. 그중에서 가장 최악인 놈은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의 길로 가게 만드는 놈이다. 그것을 종교에서는 유혹자라고 부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죽음의 충동을 느끼게끔 하는 존재. 이것을 물리치는 것은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종교의 힘, 신의 힘이 필요하다.
 
춥고 아픈 마음으로 세상을 등진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머무는 곳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기를 기도한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중앙일보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918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