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깨고 나오라
예수님께서 길을 나서셨습니다. 내리쬐는 햇빛과 풀썩이는 먼지를 받으며 사막을 가로질러 고향 '갈릴래아'로 가시는 길입니다. 정오 무렵 야곱의 우물가에 걸음을 멈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예수님이 속한 '유다인'들과 이웃인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 주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같은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예배 장소와 방식에 대하여 따지듯 말합니다.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요한 4장 20절) 이 말은 선민의식에 절어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믿음을 강요하던 유다인들을 향한 시골 여인의 뼈 때리는 지적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요한 4장 21절)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요한 4장 23절)
예수님 말씀은 명확합니다.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가톨릭 사전을 보면 "결국 교회란 하느님의 백성이란 뜻이다"라고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 헌장'에서도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신약성경 마태오복음 18장 20절에서 예수님께서 "사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 그들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영과 진리 안에서 기도하고 사랑을 전하는 사람의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은 공동체를 만듭니다. 공동체를 만든 사도들과 제자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집 저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사도행전 2장 46절)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초대 교회공동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장소를 정하지 않고 편리에 따라서 이집 저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며 모입니다. 빵을 떼어 나누는 것은 가톨릭 미사의 초기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을 지은 것은 신자들의 편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인 '하느님 백성'을 잊어버리고 그 껍데기인 '건물 교회'에 집착하여 중세 가톨릭의 어두운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가톨릭의 어두운 과거를 질책하며 개혁하고자 했던 '프로테스탄트'가 왜 교회의 본질인 하느님과 사람을 보지 못하고 예배 장소인 '건물 교회'에 집착할까요.
전염병 시대에 교회가 갈 길을 짧은 몇 마디로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만큼 예수님과 그 교회가 욕먹는 때가 있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