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한국 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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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 오전 10시,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諡福)식이 거행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주례하는 시복미사는 평화방송 TV를 통해 한국시각으로 오후 5시부터 생중계된다.
◎ 축일은 10월 22일
가톨릭에서 시복을 통해 복자(Blessed)로 추대된 이는 공적 경배의 대상이 된다. 복자가 되면 그가 활동했던 지역에서 축일을 지낼 수 있고, 교회의 공식 기도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성인(Saint)이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보편 교회 전례력’에 축일이 기재되고 전 세계 신자들로부터 공경받는 것과 달리, 복자에 대한 공경은 원칙적으로 그의 생전 활동지역에 국한된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일은 10월 22일로 정해졌다. 지난 11일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즉위 기념일인 10월 22일을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축일’로 선포하고, 로마와 폴란드 내 모든 교구 전례력에 해당 축일이 자동적으로 삽입된다고 발표했다. 그 밖에 지역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일을 지내려면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두 차례 교황 방한으로 전기 맞이한 한국 교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은 한국 가톨릭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한국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거행했다. 방한 중 그는 40만여 명이 모인 부산 근로자들과의 만남에서 개발독재에 인권을 침해당한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줄 것을 촉구했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와의 만남 때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혔던 젊은이가 수감 시절 자신의 양말을 풀어 엮은 십자가를 교황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1989년 10월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 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젊은이들과의 만남 시간을 갖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는 신자수가 1980년 132만여 명에서 1986년에 2백만 명을 넘는 등 급속하게 교세가 확장됐고, 내부로는 시대의 징표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전기를 맞이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 200주년(이하 ‘200주년’) 기념과 103위 순교성인 시성을 위해 방한했던 1984년 5월 6일에 200주년 사목회의 본회의를 개막, 7개월 간 교회와 사회의 현안들을 논의했다. 3년의 사전 준비를 거쳐 마련된 사목회의 의안에는 ▲정치권력과 공동선 ▲분배정의 실현 ▲언론의 역기능 경고 ▲한국사회와 교회의 선교정책 ▲한국 경제개발의 반성 등 사회적 메시지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1989년 서울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이하 성체대회)는 한국 교회에 나눔과 대화의 소명을 일깨웠다. 성체대회 기간이었던 89년 10월 7일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는 그리스도교 일치기도회가, 도라산 전망대에서는 남북한 평화통일 기원미사가 거행됐다. 1987년 성체대회 준비위원회의 결의로 설립된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세계성체대회에 앞서 입양결연추진 결의대회, 대한적십자사와 함께하는 헌혈대잔치를 전개했으며, 캠페인 실적을 모아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봉헌하기도 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현재까지 국내 최대 규모의 천주교 NGO로 활동 중이다.
◎ 반(反)생명 문화에 경종 울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추기경 시절 집필에 참여한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1968년)은 인공유산과 산아제한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 세계적으로 반생명적 의료행위를 막는 데 이바지했다. 교황 재임 기간에 발표한 <생명의 복음>(1995년)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호, 생명에 봉사하는 문화 건설을 촉구한 회칙이다. 일찍이 낙태와 출산 통제, 성(性)의 비인간화, 안락사 등 반생명 문화의 위험을 경고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생명 경시와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 사진으로 보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사랑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반도에 ‘교황 선풍’을 일으켰고, 한국인들은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소탈한 면모에 환호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방한에 맞춰 제작된 ‘교황님 책받침’은 어린이들의 인기 애장품이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도자기 항아리에 담긴 성수를 쪽바가지로 떠서 세례를 주고, 느리지만 정확한 한국어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의 한국 사랑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드높였다. 교황 방한 때 사용했던 유물들은 현재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 전시돼 있다.


▲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미사 때 사용한 미사경본. 한국어 발음, 한글, 라틴어 순으로 표시된 기도문이 이채롭다.

▲ 요한 바오로 2세가 1989년 세례식에 사용한 성수 항아리와 바가지.
*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유품 보기 = http://blog.naver.com/cbckmedia/130107214923 * 방한 당시 홍보물, 기념품 보기 = http://blog.naver.com/cbckmedia/13010721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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