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 19일, 「경향잡지」 창간 100주년 기념식 개최 |
기네스북에 오른 국내 현존 최고령 잡지 |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 10. 9. |
□ 기념식에는 1964년에 주필을 맡았던 정진석 추기경(현 서울대교구장)을 비롯하여, 60년 이상 구독하고 있는 이우락 옹(81세)도 참석한다.
□ 이날 기념식은 「경향잡지」 창간 100주년 기념 미사를 시작으로, 한국잡지협회장의 축사, 그리고 장기 구독자들에 대한 시상식, 100주년 기념 수필 공모 시상식 등이 있을 예정이다.
□ 1972년도에 발행인을 맡았던 김수환 추기경은 100주년 기념호에서 “하느님의 구원 말씀의 전달자로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경향잡지가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은 기념할 만한 일”이라며, “경향잡지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언제나 밝게 빛나기를 빈다”고 축하를 전하였다.
□ 정진석 추기경도 “일본 강점기, 6.25 한국 전쟁, 민주화 운동 등 지난 백년간 급속한 변화 속에 경향잡지가 올바른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다해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지난 세월의 영광과 업적에만 안주하지 말고, 민족의 복음화와 이땅의 복음화를 위해 매진하여 줄 것”을 당부하였다.
□ 「경향잡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6년 10월 19일 천주교가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창간한 <경향신문>의 부록인 「보감」이 그 전신이다. 순전히 종교적인 신문의 발행만을 강요한 총독부의 압제 때문에 1910년 12월 30일 <경향신문>이 폐간되자, 1911년 1월 15일 그 부록인 「보감」을 종교 잡지인 「경향잡지」로 제호를 변경하여 반월간으로 발행하였다. <경향신문> 창간 당시의 방침대로 서울 사람뿐 아니라 시골 사람들도 알아듣기 쉽게 발행한다는 뜻에서 ‘경향’(京鄕)이란 제호를 택한 것이다.
□ 「경향잡지」는 종교사적인 가치만이 아니라 잡지 및 출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의 언어마저 말살하려던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묵묵히 우리 얼, 우리글을 지켜오고자 처음부터 순 한글로 써 왔기에, 국어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또 창간 당시 ‘법률문답’이란 고정난을 설정하여 한국 최초로 지상 법률상담을 시작하여 국민의 권익옹호와 애국 계몽운동에도 공헌하여 한국법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 한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경향잡지 창간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3월 130명의 성지순례단을 구성,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경향잡지를 봉정하고 돌아왔다. 또 5월에는 “경향잡지 100년, 다시 100년을 향하여”라는 표어를 걸고, 경향잡지 10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경향잡지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 끼친 영향 등을 점검해 보고, 새롭게 펼쳐갈 100년을 내다보고자 ‘경향잡지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도 개최하였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으며, 총색인정리를 진행하고 있다.
「경향잡지」 가치 사료적 가치 1910년 한일합방을 단행한 일제는 민족 언론에 대한 탄압정책 일환으로 <경향신문>을 폐간하였다. 교회당국은 경향이란 제호를 이어받아 국판 크기의 「경향잡지」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간행을 계속하여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잡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잡지이다. 창간 당시 ‘법률문답’이란 고정난을 설정하여 한국 최초로 지상 법률상담을 시작하여 국민의 권익옹호와 애국 계몽운동에도 공헌하였는데, 이는 한국법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개화기의 교회사를 이해하는 데 불가결의 중요한 자료이다. 「경향잡지」은 창간 이래 대한제국과 일제식민지, 미군정 그리고 대한민국의 거의 전 기간을 지켜보아 온 가톨릭교회의 증언록이다. 거의 매호마다 수록된 교회소식은 당시의 생동하던 교회상을 우리에게 재현시켜 주고 있다. 또 거기에 실린 사진들은 오늘날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 거기에 실린 모든 글들은 교회의 신학사조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자료이다. 종교적 가치 교리지식을 통하여 신자들을 교도하고 신앙을 지키는 무기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 교회의 공지사항은 물론 한국교회사에 관한 지식을 널리 보급시키고 역사의식을 고취시켰다. 광복 이후 특히 순교자 현양과 반공정신을 고취시켰다. 순교자 현양회 사업을 통해 순교자 신심을 드높였고, 북한과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공산당의 박해소식을 전하여 교우들에게 반공사상을 고취시킨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공의회 문헌 해설, 전례, 성서 등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취급하였고, 공의회 정신을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쇄신시켰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사회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1980년대부터는 ‘생명운동’ 칼럼을 신설하여 사회에 앞선 안목으로 교회의 시각에서 생명, 환경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각도로 짚어나갔다. 1990년대 이후에는 전례해설과 묵상, 본당, 수도회, 교회기관 등 공동체 소개와 모범적인 신앙인을 소개하여 신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물론 신앙생활에 자극을 주었다. 종교적 시각에서 사회현상과 문화적인 움직임들을 짚어보아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안목을 길러주었다. 국어학적 가치 1906년 창간 당시, 대부분의 잡지들이 한문에 한글로 토를 단 한문투의 문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 속에서 「경향잡지」은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여 언문일치를 지향하였다. 논설이나 기사의 내용도 민중들이 알아듣기 쉽고 맵시 있는 문장을 사용하여 우리말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68년부터 구활자가 아닌 신형활자를 사용하고 이듬해부터 가로쓰기를 시행하는 등 국어학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에도 올바른 국어 맞춤법과 쉬운 표현의 글로 민중 언어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경향잡지」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발행하는 종합 월간지로 한국 천주교회 대표 잡지 가운데 하나다. 1906년 10월 19일 한국 천구교회에서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창간한 <경향신문>의 부록인 「보감」이 그 전신이다.
순 한글 주간지로 법률 문답, 한국 교회사, 각종 논설 등을 수록하여 매주 금요일 국판 8면 형태로 발행하였다. 초대 발행인 겸 주필은 안플로리아노(Florian Demange, 안세화) 신부였고, 발행소는 경향신문사였다.
<경향신문>이 한일합병 이후 순전히 종교적인 신문의 발행만을 강요한 총독부의 압제 때문에 1910년 12월 30일 폐간되자, 1911년 1월 15일 그 부록인 「보감」을 종교 잡지인 「경향잡지」로 제호를 변경하고 발행소 명칭도 경향잡지사로 개칭하였다. 경향신문 창간 당시의 방침대로 서울 사람뿐 아니라 시골 사람들도 알아듣기 쉽게 발행한다는 뜻에서 ‘경향’이란 제호를 택한 것이다.
월 2회 격주간으로 바꾸는 대신 16-24면으로 증면하여 발행하였는데, 초대 편집인인 드망즈 신부가 대구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1911년4월부터 명 요한(Jean M. Georges Meng) 신부가 발행인 겸 주필을 담당하다가 이후 한기근 바오로, 윤형중 마태오, 조제(Joseph Jaugey, 양수춘) 신부 등이 번갈아 그 책임을 맡게 되었다.
「경향잡지」는 발행 당시부터 순 종교 잡지로서 1920년대부터 구독자 확대 운동을 벌였고, 1931년 가톨릭 지도서에 경향잡지 구독 권장을 명시하는 등 노력하였으며 1933년 주교회의에서 공식 기관지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면수를 줄이고 격주간에서 월간 격월간으로 축소 발행하다가 1945년 5월 15일자로 폐간을 결정하게 되었다. 경향잡지에는 해방 이전의 교회 실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각 시기별로 당시의 신학 사조나 흐름을 이해시켜 주는 귀중한 내용들이 많다.
해방을 맞아 1946년 8월 1일자로 복간 발행인 겸 주필을 윤형중 마태오 신부가 맡아 월간 18면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1950년 7월부터 휴간에 들어갔고 1953년 7월 1일 면수를 증면하고 반공정신을 고취하는 내용 등을 담아 다시 간행을 하게 되었다. 곧 북한과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교회에 대한 공산당의 박해소식을 전함으로써 교우들에게 반공사상을 고취시켰으며, 한국 순교자현양회 사업을 통해 순교자에 대한 신심을 앙양시켰다.
1959년 7월 1일부터 잡지의 발행권이 서울교구로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관되었고 1960년 전 광주대교구장 주교인 윤공희 빅토리아노 신부, 1964년 현 서울대교구장 주교인 정진석 니콜라오 신부가 주필을 맡아 갖가지 사회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의회 문헌의 해설을 통한 신앙쇄신 운동에 앞장섰다. 1968년부터 구활자가 아닌 신형 활자를 사용하고 이듬해부터 가로쓰기를 단행, 지면도 100면으로 늘여 발행하였다.
편집 간행이 서울교구에서 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관된 이후 내용이나 체제 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독자들의 요구를 반영시켜 독자들과 대화를 시작하였고, 공의회 문헌 해설, 사회정의, 전례, 성서 등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1970년대 교회법 해설 난을 두어 교회법을 해설하였으며, 정부의 모자보건법 제정에 반대하는 등 사회 현안을 짚어나가고, 국내, 국외 가톨릭 뉴스를 다달이 보도하였다.
1980년대 성서 칼럼을 연재하고, ‘교회 200년’ 칼럼을 신설하여 한국교회 200주년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컬러 지면을 신설하였다. 이 잡지는 교도권의 요구에 따라 교리지식을 통하여 신자들을 교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1987년부터 “생명운동 구원을 향하여” 칼럼을 신설하여 사회에 앞선 안목으로 교회의 시각에서 생명, 환경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각도로 짚어나가는 등 노력을 계속하였다.
1990년대 전례해설과 묵상, 본당, 수도회, 교회 기관 등 공동체 취재와 모범적인 신앙인 취재 등을 연재하고 고정 수필 난을 마련하여 신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신자들과 함께하는 잡지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 발행인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이 편집인을 맡아 창간 이래 순수한 종교 잡지로서 성격을 유지해 오고 있다. 현재 발행인은 광주대교구장인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이며, 편집인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인 조규만 바실리오 신부이다. 2004년부터 신자 재교육은 물론 선교지로서 손색없도록 문화면 등을 보강하고 136면 전면을 컬러로 편집하여 발행하고 있다.
1996년 10월 9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 안팎을 통틀어 한국에서 발행되는 가장 오래된 지령을 가진 잡지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2005년 7월호 현재 통권 1648호를 기록하고 있고, 2006년 10월 19일이면 창간 100년이 된다.
「경향잡지」 창간 100주년을 맞으며 100주년 기념식은 물론, 학술세미나, 역사 사진전, 출판물 발행 등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잡지 편집 등 비전을 마련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교회 서적의 출판 보급이 미약하던 시기에 앞서 살아온 신앙인들은 「경향잡지」를 성서 대하듯 성호를 긋고 읽었다고 한다.
「경향잡지」는 「보감」 때부터 교리지식의 전달을 통한 신자들의 교도가 그 주요 임무였다. 한국 교회사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를 번역 ‘대한성교사기’라는 고정 칼럼을 마련하여 연재하는 등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을 널리 전파하였다. 또한 ‘법률문답’등으로 일반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전하여 국민의 권익옹호와 애국 계몽운동에도 공헌해 왔다. 창간 당시부터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여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중 언어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경향잡지」에는 신자들이 알아야 할 교리지식, 교회의 공지사항, 교회사 등이 수록되어 있고 후기에는 신자들의 투고나 문학작품까지 게재되었다. 매호마다 수록된 교회소식은 당시의 교회상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교회의 기관지로서 교도권의 요구에 따라 교리지식을 통하여 신자들을 교도하는 임무를 맡아왔고, 프로테스탄티즘이 신속하게 확산되는 시기에는 교리내용을 강화하는 등 호교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경향잡지」는 순수한 종교 잡지이지만 오랫동안 한국교회와 호흡을 함께해 왔으며, 그 내용에 한국교회의 변화가 그대로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