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앞 사거리. 영하 1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 두꺼운 외투로 무장한 중·노년 남녀 10여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화석연료 OUT(추방)’ ‘기후정의 지금 당장’ 등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든 이들은 143번째 한국가톨릭기후행동 금요기후집회에 참가한 신도들입니다. 오전 11시 20분쯤 이들은 집회 운영위원 박성재 신부를 중심으로 작은 원을 만들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박 신부는 시위가 무사히 진행되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 한 명이라도 환경보호에 힘쓰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끝나자 신도들은 광화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흩어져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1인 시위로 기후위기 대응 촉구
오전 11시 반부터 한 시간가량 신도들이 1인 시위를 벌이는 동안 박 신부는 빠르고 흥겨운 가락으로 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사거리 신호등에 나눠 선 신도들은 ‘지금 당장 탈핵’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살리자’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길가는 시민들에게 흔들어 보였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 몇 명이 “수고하십니다” “고생하십니다” 등 격려 인사를 건넸습니다. 반면 한 70대 남성은 큰 소리로 “환경보호를 왜 강요하냐”고 화를 냈습니다. 또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기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욕설을 뱉기도 했습니다. 박 신부는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시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시고 좋게 봐주세요.”
박 신부의 말에 언성을 높이던 사람들이 머쓱한 듯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습니다.
한국가톨릭기후행동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회칙(지침) ‘찬미 받으소서’에 담긴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창단됐습니다. 자연생태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2015년 가톨릭기후행동연합이 국제적으로 결성됐고 국내에서는 2020년 한국가톨릭기후행동이 출범했습니다. 현재 300여 명의 신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태적 회심(자연으로의 회귀)을 추구하는 신앙생활’ ‘친환경적 일상생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변화 촉구’를 목표로 활동합니다. 대표적 활동 가운데 하나가 금요기후행동 집회입니다. 삼척화력발전소 폐지 운동 등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환경에 무책임한 정부 태도 안타까워
집회에 참여한 성가소비녀회의 윤 마리고레띠 수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에서 태어나 자연환경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자랐는데, 그런 지구가 파괴되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이 집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현 정부는 환경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부의 반환경적 행보와 달리 환경보호에 대한 시민의식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 위안을 받습니다.”
같은 수녀회의 임 리베 수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후손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이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과거 유치원에서 근무했다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자연을 물려줘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 똑바로 살지 못해 이렇게 환경이 안 좋아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완신 신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극곰의 멸종 위협을 넘어 태평양 군도 국가들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충격적입니다. 지금이라도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려 기후재난으로부터 피해받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기후대응 정책 압박할 시민의 인식변화 절실
1인 시위를 한 시간 남짓 벌인 후 참가자들은 다시 박 신부를 중심으로 모여 마무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박 신부는 추운 날씨에도 열심히 참여해 준 신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했기를 바랍니다.”
참가자들은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현장을 정리하고 헤어졌습니다.
박 신부는 이어 인근 식당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 지도자, 기업의 오너와 같은 결정권자들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시민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겨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신부는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가톨릭기후행동의 영향력이 교단 전체로 좀 더 커져야 하는데,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톨릭기후행동이라는 이름에 가톨릭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가톨릭 내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대응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가톨릭기후행동이 금요기후행동 집회 외에 삼척화력발전소 폐지 운동도 벌이고 있다고 소개하며,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국내 종교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 활동도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6개 종교는 지난 2001년 결성된 ‘종교환경회의’라는 연대체를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 때도 각 종교의 기후행동단체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또 1986년 결성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열어 종교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s://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489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 2탄을 시작합니다. 2021년 4월 시작된 ‘기후위기시대’ 연재 기사를 단비뉴스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와 영상으로 전합니다. 이 연재 기사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현황과 대안,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리뉴스 1탄 ‘마지막 비상구’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기후위기 현실을 깨닫고 함께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리뉴스는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팟빵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