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자유 나눔방
자유 나눔방

자유 나눔방

퇴장료-솔모루성당 김종보 요셉 (소설가)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22-10-25 조회수 : 721

퇴장료

 

 

솔모루성당 김종보 요셉 (소설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한해였다. 올해도 계절은 어김없이 자리바꿈하더니 어느새 산과 들을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미루었던 성사를 보기위해 오랜만에 성당을 찾았다. 그날 강론은 홍천 피정의집 오상현(요한보스꼬) 은퇴 신부님의 특별강론이 있었다. 신부님은 은퇴하기까지의 지난 회상을 잔잔하게 펼쳐 놓으셨다.


신부님이 밝히신 소회는 이러했다. 은퇴를 하고나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더라. 이미 떠난 사람도 많다. 그것이 내 몸에서도 느껴진다. 눈도 침침해지고 치아도 하나 둘 씩 빠지더라. 이렇게 모든 것은 소멸해간다. 이 세상에 불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사라져 갈 뿐이다.


그런 신부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여러분은 이 좋은 계절에 단풍놀이도 가지 않고 성당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말씀은 또 이어졌다. 오들도 혼돈의 세상은 휘청거리며 돌아간다. 여러분도 내일부터 다시 한 주일을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그렇게 주어진 삶을 위해 생존경쟁을 벌일 것이다. 단 한 가지 목적은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고통도 만난다.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나 삶을 추구한다. 그 끈질긴 의지와 열정은 무엇 때문인가. 그렇게 살다보면 다시 주일이 돌아와 또 성당에 나온다.


그런 신부님은 또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그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자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침묵이 깊이 잠들어 갈 무렵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가 꿈꾸는 그 희망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지요?”

!”
하지만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이어 신부님은 미국 문화를 말씀하셨다. 미국에서는 모든 공연장에 들어갈 때 티켓을 끊으면, 한국처럼 입장할 때 제시하지 않는다. 그 나라 문화는 모든 공연이 끝나고 퇴장할 때 티켓을 낸다. 신부님은 그 퇴장료의 의미를 평생 간직하시며 사셨다고 했다. 듣고 보니 신부님의 소회가 참으로 위대하고 경이롭게까지 느껴졌다. 신부님은 평생 성직자로 살아 오셨다.


그런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늘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사는 동안 열심히 퇴장료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나는 그 말씀이 각자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신부님은 평생 봉사와 헌신으로 사셨는데, 그럼에도 은퇴를 하셨음에도 사랑의 헌신과 봉사를 이어가신다. 그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신부님 지금까지 저축해 두신 그 퇴장료를 저에게 좀 빌려 주시면 안 되나요?’ 하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무슨 방법으로 갚을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생각에 젖어 있을 때 신부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다. ‘여러분은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선다. 바로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의 의미는 이러했다. 세상에서 삶의 의욕만큼 내세의 삶을 위한 목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신은 죽지 않는 영원불멸한 삶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희망이며 목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삶의 과정도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마음으로, 각자 기쁨으로 승화시켜 나가기를 바라셨다.


그러면서 오신부님은 과거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당시에 단 하루라도 매일미사에 갔다 오지 않으면 부모님으로부터 그날 저녁은 받아먹을 수 없었다는 말씀을 듣고, 문득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났기에 유년시절에 혹독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방학 때가 되면 마음대로 밖에 나가 놀 수가 없었다. 당시 첫 영성체를 앞두고는 12단 경문을 빠짐없이 암송해야 했다. 그 때의 기도문은 참으로 길었었다. 어찌되었든 그래야 부모님도 성사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었기에 그럴 수 밖 에 없었다. 지금 시대와 비교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신부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삶은 영으로 임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며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퇴장료를 준비하는 자세라고 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축복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 날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비롯해 온갖 문명의 혜택으로 인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 말씀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오늘도 저에게 영혼육신을 주시어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 저는 비록 죄가 많사오나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매일같이 하는 기도지만 오늘따라 사무친다.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달이다. 우리는 오늘도 부여받은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죽어간다. 그렇게 하느님의 섭리 안에 거역할 수 없는 소멸의 시간을 타고 넘어간다. 그래서 나는 주어진 사명에 더욱 순종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먼 훗날 내 영혼의 고향인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를 준비하기위해그렇게 열심히 퇴장료를 준비할 것이다. 그날 오신부님은 강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미사에 나오신 여러분. 세상에 사는 동안 퇴장료를 두둑하게 준비해 놓으세요. 그리고 훗날, 한 분도 빠짐없이 하늘나라에서 나와 다시 만납시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나오자 한 낮의 햇살에 비친 단풍잎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