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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춘천교구장 사목교서

작성자 : 문화홍보국 작성일 : 2019-12-02 조회수 : 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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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천주교 춘천교구 사목교서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2코린 5,17)






1. 이제 우리는 은혜로운 춘천교구 설정 80주년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시간을 선물 받습니다. 지난 2019년은 교구 설정 8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의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다짐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80주년의 감사와 다짐을 희망 속에 녹여내어 앞으로 맞이할 100주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신앙의 기쁨 속에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2. 이 준비를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스스로 세 가지를 질문해 봅시다. 우리 신앙의 첫 마음은 어디에 바탕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신앙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성장되어야 하는가? 또한 우리의 신앙은 삶 속에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우리 신앙의 첫 마음은 어디에 바탕하고 있는가?


3. 우리의 시간을 돌아보면 창조의 순간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성사를 통한 은총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티토 3,4-7)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은총입니다. 


4. 그러하기에 우리 신앙의 첫 마음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 ‘감사함’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현재화되는 미사도 그 명칭이 초기에는 ‘감사’를 뜻하는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라고 불렸음은 감사와 영원한 생명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감사함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총을 맞이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첫 마음을 ‘감사함’에서 찾아야 합니다. 


5. 이 감사함은 특별히 기적과도 같은 일이 나에게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의 시간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는 참된 감사를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을 것이고, 때때로 우리의 신앙이 여러 가지 시련과 유혹으로 흔들릴 때 다시 그 중심을 찾아주는 우리 신앙의 첫 마음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8)




우리의 신앙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성장되어야 하는가? 


6.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서로에게 메마르고 단절되며, 보이지 않는 갈등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차이’는 ‘차별’이 되기도 하고, ‘다름’이 ‘틀림’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사실 ‘다름’은 서로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언가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사람들로 살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는 신앙 안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입니다.

7. 초기 교회의 모습에서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문화 차이로 생길 수 있는 갈등과 인간적 ‘다름’을 신앙적 ‘어울림’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는 ‘사랑 안에서 다름을 인정’하였고,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하며 ‘신앙 안에서 어울림’을 통해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함’은 공동체의 성장과 성숙을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8. 그러니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차이가 아닌 고유함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성장합시다. 비난보다는 기도 안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에 대한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더 찾읍시다.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닮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듯,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존중하는 모습은 육화(肉化)의 신비와 사랑을 우리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신앙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함께 성장하고 함께 성화(聖化)되어 갑시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9.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창세 11,1-9 참조)는 우리 인간이 지닌 비뚤어진 욕망과 감정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또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그 형태만 다를 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나타나곤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각자가 가진 감정과 욕망들이 부딪쳐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바벨탑 이야기와 달리 같은 언어를 쓰지만 저마다의 방식대로 해석하며 서로 상처받고 아파합니다. 


10. 그러하기에 우리의 신앙을 세상 속에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보다 ‘신앙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욕망에 따른 세속의 언어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신앙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해 들은 복음도 신앙의 언어로 표현되었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언어, 그리고 위로와 희망의 언어로 우리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답게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신앙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그리스도를 입어’(로마 13,14) 불평보다는 감사를, 질책보다는 격려를, 비난보다는 위로를 서로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11.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상처받아 신앙으로부터 멀어진 분들과 교회의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신앙의 언어로 이야기함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에 건네는 기쁨과 생명의 말씀이 이제는 나를 통해 그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요한 1,1)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던’(요한 1,14)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이야기 속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언어 속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기쁨을 담아낼 수 있을 때 우리의 언어는 비로소 참된 의미를 회복할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향하여


12.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습니다.”(교회헌장 11항) 이러한 우리의 사명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특별히 세 가지 실천사항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모든 일에 감사합시다. 둘째, 서로의 다름을 사랑으로 받아들입시다. 셋째, 신앙의 언어로 말합시다. 이를 통해 선물처럼 새롭게 주어지는 매일의 오늘 안에서 참된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다 함께 걸어갑시다. 

그 길에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베푸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9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천주교 춘천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