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혼인계약과 서약의 의미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꽃과 나무처럼 걸어와서 서로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오랜 기다림 끝에 혼례식을 치르는 날,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라.” 이해인 수녀의 시구(詩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아름다움을 누구도 해치지 못하도록 거룩함으로 봉인(封印)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를 서약(誓約, foedus)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 교회는 혼인을 계약(契約, contractus)으로 설명했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계약과 더불어 서약(誓約, foedu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일반적으로 쌍방의 권리와 의무의 교환을 명시하며 맺는 것이 계약입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약 조건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면 계약은 발효됩니다. 혼인도 이와 비슷합니다. 혼인의 본질적 권리와 의무를 쌍방이 받아들이고 혼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로이 상대자를 선택하여 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와 관련된 법률행위를 규정할 때 사용되는 ‘계약’은 일방이나 쌍방에 의해 파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한 편에서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거나 쌍방이 마음이 변해 파기를 합의한다면 계약은 없었던 것이 됩니다. 그러나 혼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파기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 유대로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불가해소성을 드러내는 말이 서약(誓約, foedus)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혼인을 표현하는 용어로 이를 사용합니다. 좀 더 들여다봅시다.
교회는 혼인의 견고함을 성경 속에 표현되어 있는 하느님과 그의 백성(호세 2,16-19) 사이의 변치 않는 관계로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에페 5,31-32) 안에 현존하는 일치의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즉 하느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그 민족을 하느님께서는 그래도 당신의 신부(新婦)로 인정하고 있듯이 그리고 그 어떤 세상의 힘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방해할 수 없듯이 혼인은 파기될 수 없는 계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서약(foedus)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와 같은 의미를 염두에 둔다는 말입니다. 마치 수도자나 성직자가 하느님 앞에 자신을 봉헌하며 서약한 내용이 결코 파기될 수 없듯이 배우자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겠다는 혼인 서약은 죽는 날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서약이 지켜지도록 혼인을 성사의 품위로 올려주셨고 당신의 축복을 건네 주셨습니다. 결혼한 부부는 하느님 앞에서 체결된 서약과 배우자와 나눈 계약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