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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춘천교구

역대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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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
1939, 지목구장 : 오원 맥폴린 신부(골) Owen McPolin, S.S.C.
1889년 아일랜드 출생
1913년 사제서품
1933년 입국
1939년-1940년 12월 초대 춘천지목구장
1963년 미국에서 선종

1939년 경성교구에서 춘천지목구가 분리되면서 당시 광주지목구장인 오원 맥폴린 신부가 춘천지목구장을 겸임하였다. 하지만 임지사목(臨地司牧)은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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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대
1940, 지목구장 : 구 토마스 신부(골) Thomas F. Quinlan, S.S.C.
1896년 아일랜드 출생
1917년 사제서품
1934년 입국
1938년 죽림동성당 주임
1940년-1941년 12월 2대 춘천지목구장

2대 지목구장이 되면서 실질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신부의 출신국인 아일랜드가 적성국이 되어 홍천성당에 연금되었다. 1942년 아일랜드의 중립적 위치가 인정되었으나 활동이 금지되고, 가택연금되면서 춘천지목구장 역시 그만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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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
1942, 지목구장 서리 :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서울 주교
1902년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1930년 사제서품
1942년 1월 경성대목구장으로 임명
1942년 12월 주교성성식
1942년 1월-1945년 8월 춘천지목구장 서리를 겸임

->사목표어
“당신의 뜻대로 되소서”(Fiat Voluntas Tua)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총독부에서 외국인 주교를 모두 일본인으로 바꾸려고 하자 당시 경성대목구장이었던 라리보(Larribeau) 주교는 비밀리에 교황청에 노기남 신부를 경성대목구장으로 추천하였다. 교황청은 노기남 신부를 방인사제 최초의 경성대목구장으로 임명하면서, 평양대목구장 서리와 춘천지목구장 서리를 겸임하도록 하였다.

1942년 일제의 의해 감금된 프랑스인 성직자와 아일랜드인 성직자를 보호하는데 전력을 다하였으며, 1953년 전국교구장으로 구성된 ‘천주교 중앙위원회’를 발족시켜 총재로 선출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장래를 위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30여명의 신부를 유학보냈으며, 1958년 청주교구, 1962년 인천교구를 분리하였다. 1962년 서울?대구?광주 교구를 대교구로 승격시키고 서울대교구장을 맡게 되었으며 6월 29일자로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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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1945, 지목구장, 대목구장, 교구장 : 구 토마스 주교 (골) Thomas F. Quinlan,S.S.C.
1896년 아일랜드 출생
1917년 사제서품
1934년 입국
1938년 죽림동성당 주임
1940년-1941년 12월 2대 춘천지목구장
1945년-1955년 9월 4대 춘천지목구장
1955년 11월 23일 주교성성
1955년-1962년 춘천대목구장
1962년 7월 춘천교구장 착좌식
1962년-1966년 2월 초대 춘천교구장
1940년-1941년 12월 2대 춘천지목구장
1966년 2월 12일 춘천교구장 사임
1970년 12월 31일 삼척, 성요셉의원에서 선종

1945년 4대 춘천지목구장으로 임명된 퀸란 신부는 침체되어있는 춘천지목구의 활성화를 위하여 1948년 홍천의 물구비 본당을 시작으로 묵호, 소양로, 삼척을 분리?설립하였다. 주교좌성당을 새로 짓기 위하여 성당이 있던 약사리 위의 죽림동에 터를 마련하고, 1949년 4월 기공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홍천본당의 크로스비(Philip Crosbie, 조선희) 신부, 카나반(Frank Canavan, 孫)신부와 함께 연행되어 ‘죽음의 행진’을 해야했다. 1953년 4월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가 10월 한국에 돌아와 춘천지목구장을 다시 맡고 주한 교황사절 서리로 임명되었다.

1955년 춘천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되면서 퀸란 신부는 11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주교로 서품되었고, 춘천교구 최초의 주교가 되었다. 퀸란 주교는 의료 활동을 통한 선교에 관심을 기울여, 1956년에는 춘천에 골롬반 의원을, 1961년에는 삼척에 성요셉 의원을, 1964년에는 강릉에 갈바리 의원을 개원하였다. 1958년에는 효자동에 주교관을 준공하여 교구의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젊은이를 위한 교육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강원도의 협조를 받아 1964년 춘천에 성심여자대학이 개교하도록 노력하였다.

1962년 한국에 교계제도(敎階制度)가 설정되면서 춘천도 하나의 정식교구로 되었고, 그 해 7월 26일 교구장 착좌식을 거행하였으며, 1965년 원주교구를 분리ㆍ설정하였다. 1966년 사임을 청하고, 은퇴한 뒤 삼척에서 머물다가 1970년 12월 31일 성요셉 의원에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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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1966, 박토마스 주교(골) Thomas Stewart, S.S.C.
1925년 아일랜드 출생
1950년 사제서품
1954년 입국
1956년 횡성본당 보좌
1959년 춘천대목구의 총대리로 임명
1963년 춘천교구 상서국장 임명
1964년 춘천교구 총대리 겸 상서국장으로 임명
1966년 2월 5대 춘천교구장으로 임명
1966년 5월 주교성성
1966년~1994년 5월 5대 춘천교구장
1994년 5월 춘천교구장 사임
1994년 7월 본국으로 돌아감
1994년 10월 30일 선종


->사목표어
“회중에 모범이 될지니라”(Forma Factus Gregis)

교구분할과 관할구역의 재조정 속에서 1965년 운교동을 비롯하여 1970년 운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본당을 설립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부가 가족계획을 펼치자 행복한 가정운동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인권의 근본인 생명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여기고, 자연적인 가족계획 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72년에는 골롬반외방선교회와 ‘선교사의 인사권 위임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여 춘천교구에 파견되는 선교사들의 인사권을 교구장이 행사하도록 하였다.

1989년 교구설정 50주년을 기념하여 『춘천교구 50년사』를 발간하고, ‘춘천교구 설정 50주년 및 성체대회’를 개최하였다. 건강이 악화되어 1994년 5월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여 고국인 아일랜드로 귀국하였고, 10월 30일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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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대
1994, 장 익 (張 益) 십자가의 요한 주교
1933. 11 서울 출생
1963. 3 사제 서품
1967. 8 서울대교구장 비서
1970. 1 서울대교구 정릉 주임사제
1976. 1 서울대교구 비서실장
1990. 9 서울대교구 세종로 주임사제
1994. 11 주교 임명
1994. 12 주교 서품. 춘천교구 주교로 착좌
1995. 3 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
1995. 8 사회복지재단 김남호 복지재단 이사
1995. 10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위원 겸
교황청 대희년 중앙위원회 한국 대의원
1995. 12 교황청 종교간 대화 평의회(PCID) 위원
1996. 10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1996. 10 가톨릭 성서연합(CBF) 집행위원회 위원
(아시아-오세아이나 지역 대표)
1997. 10 민족화해 주교특별위원회 위원
1999. 10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2000. 3 동아시아 사목연수원 (EAPI) 이사
2000. 5 한림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2001. 8 사회복지재단 김남호 복지재단 이사장
2001. 12 사단법인 운석기념회 이사
2002. 10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총무 겸
사단법인 한국천주교중앙위원회 상임이사
2002. 11 한국 천주교 용어위원회 위원장
2005. 3 한일주교 교류회 추진위원 위촉
2005. 10 민족화해 주교 특별위원회 위원장
2005. 11 함흥교구장 서리
2005. 12 DMZ 평화대상 수상
2006. 3 학교법인 일송학원 이사
2006. 5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고문
2006. 10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2010. 1. 28 천주교 춘천교구 주교 사임
2010. 1. 28 - 2010. 3. 25 천주교 춘천교구장 서리
->사목표어

“하나되게 하소서”(Ut Unum Sint)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요한 17,11).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최후만찬을 함께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바치신 저 간절한 기원의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을 하나 되게 하고자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 되신"(필립 2,7)  
주님의 지극한 염원을 표어와 문장은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투박하고 어두운 땅의 붉은 흙, 그러나  
하늘의 불길이 와 닿으면 안에 품었던  
순금을 새 땅에 맑게 빛내는 흙(묵시 21,18).

  우리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하늘을 동그라미로 땅을 네모꼴로,  
그리고 둘의 결합을 우주의 하나됨으로 보아 왔습니다.  
창조의 이 조화는 우리를 하느님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한분이신 주님과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도록(에페 4,4-6)  
사랑으로 불리운 우리임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려는 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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