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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세상의 미래와 교회의 희망에 작은 이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13일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에서 찬양 기도에 대해 설명했다. 교황은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가면서 우리 삶의 어두운 순간에도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 충실한 친구이시기 때문이다.

번역 김호열 신부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21. 찬양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을 계속 이어 나갑시다. 오늘은 찬양의 측면에 대해 살펴봅시다. 

우리는 예수님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첫 번째 기적과 제자들의 하느님 나라 선포의 참여 이후, 메시아의 사명은 위기를 겪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의심을 품게 되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선포한 것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못해 고뇌했습니다. 삶에는 항상 어두운 순간과 영적인 밤의 순간이 있습니다. 요한은 그러한 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호숫가 마을에는 적대감이 팽배했습니다(마태 11,20-24 참조). 이러한 실망의 순간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정말로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전해줍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불평하시지 않고, 기쁨의 찬가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곧, 완전한 위기 중에, 세례자 요한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체험했던 영혼의 완전한 어둠 중에, 예수님은 아버지를 찬미하시고, 찬양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그 자체로’ 찬양하십니다. 곧,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아버지께서 온 세상의 하느님이심을 알고 느끼셨으며, 반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님이 아버지, 곧 “나의 아버지”임을 알고 느끼셨기 때문에 영으로 기뻐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느끼는 체험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임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작은 이들(철부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찬양하십니다. 예수님은 고을을 다니시고 설교하시면서 이를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곧,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의심이 많고, 닫혀 있으며, 계산적이지만, “작은 이들(철부지들)”은 마음을 열고,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또한 기뻐하고 하느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겸손하고 단순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순례를 떠나고, 기도하러 가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비록 많은 것이 부족함에도 겸손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볼 때 기쁩니다. 세상의 미래와 교회의 희망에 작은 이들(철부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죄를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길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형제와 자매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어둡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예수님은 아버지를 찬양하며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또한 복음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인적인 실패의 상황들, 악이 우세하고 악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이 행하시는 일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는 상황들을 다른 방식으로 판단하도록 인도해줍니다. 예수님은 청원 기도를 많이 하라고 (제자들에게) 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설명을 들을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순간에도 아버지를 찬양하셨습니다. 이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진실이 있습니다.

찬양은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아니면 하느님에게 필요합니까? 성찬의 전례 경문은 다음과 같이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로마 미사 경본』, 공통 감사송 4). 우리는 찬양함으로써 구원되었습니다. 

찬양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찬양은 “영광 중에 하느님을 뵙기 전에, 믿음 안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누리는 참행복에 참여하는 것이다”(2639항). 역설적이게도, 삶이 우리를 행복으로 가득 채울 때뿐만 아니라, 특히 어려운 순간, (삶의 여정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어두운 순간에도 찬양해야 합니다. 어두운 순간에도 아버지를 찬양하신 예수님처럼, (그 순간은 우리에게도) 찬양의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삶의) 오르막길, 어려운 길, 고단한 길을 통해 새로운 넓은 전망과 열린 지평선을 보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찬양하는 것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찬양은 여러분의 영혼을 정화시키며, 여러분으로 하여금 멀리 보는 혜안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을 힘겨운 순간에, 어려움의 어두움에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8세기 동안 우리 가슴을 뛰게 한 기도 안에 위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기도는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쓴 기도입니다. 바로 “태양의 찬가” 혹은 “피조물의 찬가”입니다. 이 찬가는 아시시의 ‘가난뱅이’ 성 프란치스코가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아니라 고난의 한가운데서 쓴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거의 눈이 보이지 않았고,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의 무게를 마음으로 느꼈습니다. 자신이 설교를 시작한 후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다툼으로 분열됐으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발걸음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실망의 순간일 수도 있고, 극단적인 실망의 순간과 자신의 실패를 인식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그 슬픔과 어둠의 순간에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내 주님, 찬미받으소서, (…)” 그는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것, 창조의 모든 선물, 용감하게 “자매”, “누이인 죽음”이라고 부른 죽음에 대해서도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어려운 순간에 하느님을 찬양한 성인성녀들과 그리스도인들, 심지어 예수님의 이러한 모범은 주님을 향한 매우 큰 길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고, 항상 우리를 정화시킵니다. 찬양은 항상 정화시킵니다. 

성인성녀들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충실한 친구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찬양의 기초입니다. 곧, 하느님은 충실한 친구이시며, 그분의 사랑은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항상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의 가까이 있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파수꾼이십니다.” 어둡고 어려운 시기에 다음과 같이 말할 용기를 얻읍시다. “주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문 보기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1-01/papa-francesco-udienza-generale-catechesi-preghiera-lod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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