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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소식






















성 김대건 사제 순교자 대축일 특집 -체포에서 순교까지-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순교자 79명과 함께 1925년 7월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한국 천주교회는 해방 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46년 김 신부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정하고, 그 축일을 그의 시복일인 7월5일로 정했다. 올해는 김대건 신부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포된 지 60돌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해 김대건 신부 생애 중 '체포부터 순교까지'의 과정을 구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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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6년 6월 5일(음력 5월12일), 황해도 작은 섬마을인 순위도 등산나루. 밤새 대지를 탐한 해무가 채 증발하지도 않은 이른 아침. 대지의 나른함을 깨우는 날카로운 소리들이 포구에 울려 퍼졌다. 나루 옆 주막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맨발로 뛰쳐나와 보니 말쑥한 양반 차림의 한 청년과 순라 포졸들이 때아닌 시비를 벌이고 있었다. 포졸들은 "조선 해안에서 어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중국 어선들을 몰아내기 위해 배를 징발하겠다"며 위협했고, 청년은 "한양에서 순위도까지 몇차례 왕래했지만 이런 법은 없었다"며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황금어장인 백령도 인근에는 중국 어선들의 횡포가 극심했던 모양이다.

 포졸들은 예상보다 선주의 저항이 거세자 호패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불심검문이다. 마침 호패를 차지 않았던 청년이 불응하자 포졸들은 "행색이 조선 사람이 아니라 중국놈 닮았다"며 청년과 뱃사람들을 포박해 등산 진영으로 끌고 갔다. 이 청년이 바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다.

 김 신부가 서울에서 순위도 등산나루까지 배를 타고 온 이유는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 지시로 서양 선교사 입국을 위한 '해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5월12일 선주 임성룡의 배를 타고 마포에서 강화, 연평도, 장연 터진목을 거쳐 등산나루까지 오면서 해도를 그렸다. 또 마합, 목동 2곳에선 중국 배를 만나 선원들에게 상해에 있는 메스트르 신부 등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하기도 했다.

 등산 첨사 정기호가 진영에 끌려온 김 신부 일행을 심문하는데 그의 행장에서 '예수성심상'과 '성모자상', 언문 소책자 1권이 나왔다. 등산 첨사는 이들이 천주교도임을 바로 알아채고 힐문하자, 청년은 "중국 광동성 오문현(지금의 마카오) 출신 '김대건'으로 25살이며 천주교를 봉양하고 있으며, 1844년(갑진년)11월에 압록강을 건너와 서울에 기거하다 올해 4월18일에 황해도 산천을 유람하려고 한강 마포에서 임성룡의 배를 타고 함께 이 곳에 왔다"고 진술했다.

 김 신부 일행은 닷새 후 6월10일 해주 감영으로 압송됐다. 황해 감사 김정집은 김 신부 일행이 압송돼 오자 곧바로 의금부에 보고했고, 의금부는 다시 국왕에게 이를 알렸다.

 당시 국왕인 헌종은 13일 이 보고를 받고 의금부에 '김대건'의 행적을 낱낱이 밝힐 것을 지시했고, 국방부격인 비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들을 서울로 압송하도록 명했다.

 같은 날, 해주 감영에선 황해 감사가 직접 김 신부 일행을  문초하고 추가로 임성룡의 아버지 임군집(요셉, 임치백이라고도 함)과 김중수를 체포했다. 이날 김 신부는 네 차례, 임성룡(23)과 사공 엄수(44)는 세 차례 문초를 받았다. 김 신부는 이 날 황해 감사에게 "자신은 '김대건'이 아니라 '우대건'"이라며 "우씨는 조선의 희성이고, 김씨는 흔해 김가로 속였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김 신부 일행은 포도청 군관 6명과 군사 4명의 특별 호위 속에 18일 해주에서 출발, 칼과 수갑을 찬 채 쉬지않고 걸어서 3일만에 서울에 당도, 포도청에 투옥됐다. 황해 감사 김정집은 김대건 일행이 압송되는 동안 김 신부가 중국 배에 부탁한 편지를 집요하게 찾아내 조정에 보냈다. 김 신부가 쓴 편지에는 여러 장의 조선 지도가 들어 있어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김 신부에 대한 문초는 6월20일부터 7월19일까지 포도청에서 도합 6차례 진행됐고, 40회의 진술이 있었다. 김 신부는 심문 첫 날 여섯 번째 진술에서 비로소 자신이 중국인 우대건이 아니라 '용인 태생' 김대건이라고 밝혔다. 김 신부의 이 '용인 태생' 진술 때문에 김 신부의 고향이 '솔뫼'가 아니라 '용인'이라고 조심스레 주장하는 학자들이 최근 간간히 등장하고 있다.

 김 신부와 함께 압송된 선주와 사공은 문초를 이기지 못하고 이의창(베난시오)ㆍ이재용(이재의 토마스)ㆍ이기원(이신규 마티아)ㆍ현석문(가롤로) 등을 밀고했다.

 영의정 권돈인은 김 신부의 신원이 모두 밝혀지자 9월 15일 어전회의에서 헌종에게 김대건을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로 사형에 처할 것을 간청했다. 함께 있던 우의정 박회수, 예조 판서 조병현, 병조 판서 김좌근, 좌참찬 김흥근, 수원 유수 이약우, 지돈녕(왕족 재판관) 이헌구 등도 영의정을 동조했다. 이에 헌종은 "김대건의 군문효수형을 즉각 시행할 것"을 명했다.

 김대건 신부는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복음 선교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 신부는 옥중 죄인들뿐 아니라 좌포도청 포장 이응식에게까지 천주교 교리와 복음을 전했다.

 1846년 9월16일 아침. 포도청 감옥에 갇혀있던 김 신부는 지금의 서울 인의동에 있는 어영청으로 압송됐다. 어영청은 1개 중대를 총으로 무장하게 하고, 나무채 2개로 만든 가마 위에 등 뒤로 손을 포박한 김대건 신부를 태워 10여 리 떨어진 처형지 새남터로 갔다. 군인들은 새남터에 도착하자 하늘을 향해 일제 사격을 하고 나팔을 불었다. 시끌벅적하던 처형장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원을 만든 후 그 안으로 김 신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관장이 일어서서 "죄인 김대건은 외국인과 교섭했기에 사형에 처한다"며 선고문을 재빨리 읽었다.

 관장의 낭독이 끝나자 김 신부는 큰 소리로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았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내 종교와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라며 복음선포로 유언을 남겼다.

 군사들은 김 신부의 속바지까지 벗기고 양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얼굴에 물을 뿌린 뒤 회가루를 뿌렸다. 그런 다음 군사 2명이 김 신부의 겨드랑에 몽둥이를 꿰고 그를 어깨에 맨 채 원 둘레로 3바퀴 돌았다. 그러는 동안 군사들은 김 신부에게 갖은 희롱과 모욕을 주었다. 희롱이 끝나자 김 신부를 매고 돌았던 군사 2명은 그의 무릎을 꿇리고 두 귀에 화살을 뚫어 꽂았다. 그런 다음 김 신부의 머리채를 새끼로 매어 모래사장에 꽂아 놓은 창 자루에 뚫린 구멍에 꿰어 반대쪽에서 그 끝을 잡아당겨 머리를 쳐들게 했다.

 김 신부는 이런 와중에도 조금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이렇게 하면 되었소? 마음대로 칠 수 있겠소? 자! 치시오. 나는 준비가 다 되었소"라고 말했다. 군사 12명이 칼을 들고 서로 싸움을 하듯 김 신부 주위를 빙빙 돌며 검술시범을 보이더니 차례로 김 신부의 목을 쳤다. 김 신부의 머리는 8번째 칼을 맞고서야 떨어졌다. 군사 한명이 김 신부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관장에게 보여주니, 관장은 형집행을 조정에 보고하려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김대건 신부는 만 25살에 순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 순위도에서 체포됨
김대건 신부가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서양 선교사 입국로 개척을 위해 서해안 일대 해도를 작성하던 중 황해도 순위도 등산나루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있다.

▲옥중 세례를 베풂
포도청으로 압송된 김대건 신부가 한달여간 혹독한 옥중생활을 하면서도 죄인들에 복음을 전파, 함께 체포된 선주 임성룡의 아버지 임군집에게 옥중 세례를 베풀고 있다.

▲위대한 순교
김대건 신부가 1846년 9월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어영천 군사들에게 참수형에 처해지고 있다.  그림= 탁희성 화백
 
[평화신문  200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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