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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춘천교구

본당 약사

남춘천지구 청평 성당

2016.02.17 17:46

문화홍보국 조회 수:672

성 라우렌시오 청평 성당

 

청평 성당은 서울대교구 양평본당 청평공소에서 1953107일 본당으로 승격, 설립되었으며 주보성인은 성 라우렌시오이다. 청평을 비롯한 가평군 지역은 포천군과 함께 1939년 춘천교구가 설정된 후에도 서울교구 관할이었다가 19691119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합의 의결로 관할교구가 서울교구에서 춘천교구로 이관되었으며 청평 성당의 관할 구역은 가평군과 양주군 화도면 및 수동면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청평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19536.25 전쟁 전후의 상황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53727일 휴전협정으로 전쟁은 종식되었으나 수없이 많은 이재민과 전쟁고아들을 양산하였다. 195212월 청평에 주둔해있던 미군은 포화 속에서도 전쟁 고아들을 모아 지금의 성당자리인 옹기점 터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개신교 장로에게 운영을 맡겼는데 그의 부인이 고아원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미군들은 19533월 서울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던 윤을수(라우렌시오) 신부에게 고아원 운영을 부탁하였다. 미군의 요청을 받고 윤신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에게 고아들을 돌보아달라고 부탁했고 인수한 고아원을 친애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친애원은 250평 규모의 큰 목조건물이었는데 이곳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청평공소의 얼마 안되는 신자들도 함께 미사를 봉헌하도록 하였다. 윤 신부는 본당 신부는 아니었으나 친애원의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지역 신자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으므로 본당 승격 이후인 1954111일부터는 친애원의 원장과 청평 본당의 주임을 겸하게 되었다. 본당으로 승격은 되었으나 성전도 없이 고아원 강당을 사용하였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새 성당을 짓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955810, 성당건축 기공식을 하고 그해 1218일 성당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청평본당이 처음에는 서울교구 소속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사제에 의해 사목이 이루어졌지만 춘천교구로 이관되면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외국인 사제들에 의해 사목이 이루어졌다. 19723월 부임한 신 안토니오(Peter Anthony O’Brien)신부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틈나는 대로 신자 가정을 방문하고 본당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춘천교구 소속의 한국인 사제가 처음으로 부임한 1980년에는 청평 본당의 재정은 전무한 상태였고 친애원의 화재와 신축 건물 부도 문제로 인해 신자들 간의 분열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부임한 한국인 사제들은 자립의 길을 모색하며 신자들의 신앙쇄신을 위해 노력하였고 청평주보를 발행하면서 본당이 화합하는데 중점을 두고 사목하였다. 또한 침체된 본당의 활성화를 위해 성당 신축을 계획하였고 성당 신축계획을 세운지 6년만인 19861215일 박 토마스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하였다. 성당 신축 후 교육관과 사제관 등 본당의 부속시설들도 보완하며 외적성장과 함께 내실도 기하게 되었다. 현재 청평 지역은 경춘선 복선전철의 개통과 수도권에 인접해있다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타 본당에서의 신자 전입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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