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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춘천교구

본당 약사


예수성심 죽림동 주교좌 성당


림동 주교좌성당은 1920년 9월 22일 곰실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며 설립되었고 주보는 ‘예수성심’이다. 곰실 공소는, 1888년 파리외방전교회 르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된 풍수원 성당의 관할 공소로,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일년에 서너 번씩 방문하여 가정집과 '강당'에 모였으나 교우 수가 무려 300여명에 이르자 본당 설립과 상주 사제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다. 당시 곰실 공소의 회장이었던 엄주언(마르티노)은 풍수원 본당과 서울의 명동성당을 오가며 상주 사제파견을 요청하여 1920년 9월 18일에 사제품을 받은 김유룡(金裕龍, 필립보) 신부가 그해 9월 22일 부임하면서 춘천지역의 첫 본당이 되었다. 김유룡 신부의 서한에 의하면 부임 당시 곰실 본당의 관할 지역은 춘천, 인제, 가평, 양구, 화천, 홍천 등 6개 군에 15개의 공소가 있었으며 약 1천여명의 신자수가 전한다. 곰실 본당에 부임한 김유룡 신부는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하기 위하여 춘천시내로 진출할 마음을 먹고 애련회(愛煉會, 연령을 위한 단체)를 조직하여 가마니짜기, 새끼꼬기, 짚신삼기 등으로 기금을 조성해 죽림동 성당 아래 골롬반 병원 터와 아랫마당 그리고 수녀원 터에 있던 집을 사서 개조하여 1928년 5월부터 성당으로 쓰게 되었다.

현재의 죽림동 성당은 김유룡 신부와 엄 회장이 이끈 곰실 교우들이 애써서 마련한 터에 퀸란(Thomas F. Quinlan, 토마스) 신부가 매입한 언덕 위에 세우게 되었는데 그 기공식은 성당 벽에 라틴어로 붙어있는 초석이 말하듯이 1949년 4월 5일에 있었다. 사전에 계획이 되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치하의 외국인 구금과 연금 등으로 착공이 지연되다가 해방과 더불어 미군부대의 도움을 얻어 1949년에 착공하게 된 것이다. 거의 한 해 동안 공사를 한 성당 건물은 내부공사에 들어가려던 완공단계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산군의 포격과 유엔군의 반격 공습을 거치는 중에 건축을 중단한 성당의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과 부속건물이 대파되었다. 전란중임에도 불구하고 1953년 미군과 성청의 지원으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1956년 6월 8일 ​죽림동 성당의 주보 축일인 예수 성심 대축일에 새로운 모습을 갖춘 주교좌 성당의 축성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어려운 시대에 파괴된 성당을 복구하며 완공한 성당이었지만 4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노후되어 대대적인 중창 작업을 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94년 춘천교구장에 착좌한 장익 주교는 1998년 4월부터 9월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까지 5개월에 걸쳐 성당의 안팎 공간의 형태는 역사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성당내부는 많은 미술가와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전례 거행에도 합당하고 예술적으로도 흡족한 성당의 모습을 만들어 2000년 대희년과 교구설정 60주년에 교구의 상징이자 중심인 죽림동 주교좌 성당의 모습을 일신하고자 하였고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인정되어 2003년 6월 25일 등록문화재 제54호로 등록되었다.

죽림동 성당의 뒤뜰에는 성직자 묘역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춘천교구에서 활동하다가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곳인 동시에 신앙을 증거하고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애쓰다가 희생된 순교자들이 함께 모셔진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이 묘역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희생당한 고 안토니오 신부, 라 바드리시오 신부, 진 야고버 신부의 유해가 안장되어있고 북한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었던 백응만 다마소, 김교명 베네딕토, 이광재 티모테오, 손 프란치스코 신부의 가묘가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이 묘역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충실히 살다가 생을 마친 순교자들과 성직자들이 잠들어 부활을 기다리는 영원한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죽림동 성당에는 부설 성심유치원이 있다. 본래 성당에 유치원이 설립된 것은 1930년 12월 15일이고 당시 명칭은 소화유치원이었다. 소화유치원은 당시 주임신부였던 이기준 신부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도지사의 협조를 얻어 강당을 신축하고 인가를 받은 것이다. 당시 소화유치원은 춘천사회의 아동교육기관으로서 평판이 자자하였다고 경향잡지는 소개하고 있다. 설립 이후 유치원생들의 율동대회 및 원장 취임식등과 관련된 기사가 경향잡지에 소개되고 있으나, 어떠한 이유로 폐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44년 폐원하였다. 성심유치원은 1978년 다시 개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지역복음화를 위해 신앙안에서 어린이 교육에 성가소비녀 수도회가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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