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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춘천교구

교회사 자료실


우리 연구소의 상임연구원의 발표물입니다.

그리고 두번 째 첨부는 이 발표에 대한 우리 연구소 연구위원이신 방동인 선생님의 글입니다.


파일 다운로드:  포도청등록에 나타난 병인박해기 강원지역 인물 고찰.hwp



『포도청등록』에 나타난 병인박해기 강원지역 인물 고찰 에 대한 讀後評


1. 1페이지에서 脚註에서 제시하고 있는 <병인박해 시기 『포도청등록』을 통한 연구>는 이미 1960년대초 柳光烈 선생이 그 효시이고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要 揭載.

2. 目次를 대할 때, <병인박해 이전과 이후>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해 주고 있지 않다.

3. 1페이지 본문 2행째 글, "천주교에 대한 탄압은 이를 피해 지역으로 이주하는 이들을 발생시켰고,……" 文章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4. 2페이지 <병인박해 이전 강원지역 관련 인물>에 대한 부분은, 前文에서 이런이런 기록들이 있다고 전제한 다음, 자료 해설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됨.

5. 4페이지(1801년 11월 8일 義禁府 보고)와 5페이지(1801년 11월 9일 刑曹 보고)에 인용한 것을 <조광 역주, 위의 책 69쪽>이라고 한 것은 피해야 하는 論據引用 例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趙珖선생의 논저를 참고했다>고 했기 때문에 인용근거는 그것으로 족하고, 이곳에서는 原文을 밝혀 주는 것이 원칙이다.<『승정원읽기』, 순조원년 11월 8일과 9일 기사임>.

6. 5페이지 하단 기사에, "……이 과정에서 강원지역으로 도망한 교우가 많아지면서……>에서 <도망>하였다는 표현은 상스럽다고 생각한다.

7. [표 2]에서, 보충해야 할 인물로는 金伯心과 趙亨元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김백심 丙寅十一月初七日 罪人 金伯心(邪號 앙보로쇠) 年七十三

金伯心矣身段 本以江原道平昌胎生 儒業從事矣 年前移接於忠州西村盟洞面 而十五前 受學於堤川排論 張樂西處 領洗於順興名不知文哥處 三年前堅陳於洋人朴神父 而仍爲作號 今雖廢工學之甚矣 至於洋人通涉之境 則豈敢曰發明之端乎 沙格一款 船隻去來等事 今始初聞到此 地頭無辭 遲晩是白置.


김백심은 본디 강원도 평창 태생으로서 儒業에 종사하였다. 몇해 전에 충주 서촌 맹동면에 이접하였고, 15년 전에 堤川排論의 張樂西(韶)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다. 그리고 영세는 順興에 사는 이름은 모르지만 文哥에게 받았고, 3년 전에 서양인 朴신부에게 견진하였고, 이내 작호하였다. 지금 비록 천주학의 廢工이 심하지만, 洋人과의 통섭한 경우에 대해서 어찌 감히 發明의 단초로 말하겠습니까. 沙格[사공] 一件과 선척이 오고간 일에 대한 것은 여기 와서 처음 듣는 일인데, 할 말이 없습니다. 遲晩입니다.

※ 遲晩:죄인이 벌을 받을 때에 自服하면서, '너무 오래 속여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쓰여, 자기의 自服함을 이르는 말.

戊辰五月十八日 罪人 趙亨元(邪號 妖案) 年 二十二

閔用伊 年 二十八

閔宗伊 年 二十三

〇 宋兼辰 年 三十一

〇 宋在烈 年 五十

〇 宋知在 年 四十

〇 宋在柱 年 四十三


조형원 戊辰五月十八日 罪人 趙亨元(邪號 妖案) 年 二十二

趙亨元段 矣身本以楊根胎生 丙午年兮 移接於洪川斗美洞 而聖敎 十六歲 始學於橫城朴道顯處 因渠指揮 邀見洋人權神父於矣家 仍爲領洗作號妖案 而間或口習矣 至丙寅風波 邦禁至嚴哛除良 矣父亦以此等事 避身幾年 生死姑未得聞 則爲其人子者 染邪之痛恨 倘復如何哉 邪學二字 誓天盟地 唾涎永絶矣 忽至此境 死生惟在處分是白置.


조형원은 본디 양근 태생으로서 병오년(1846)에 홍천 두미동(斗美洞)에 이접하였고, 성교는 16세 때 횡성의 朴道顯에게서 처음 배웠다. 그의 지휘로 양인 권 신부를 집에서 만나 뵙고 이내 영세하고 작호를 妖案이라 했다. 그리고 간혹 口習하였는데, 병인년 풍파에 국가가 지엄하게 금할 뿐더러 아버지 역시 이 일로 여러 해 동안 피신하여 생사에 대해 들은 바가 없는데, 자식된 자로서 사교에 물든 통한을 어찌 두 번 다시 반복하겠는가. 邪學 두 글자를 천지에 맹서하되 침뱉고 永絶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생사는 오직 처분만 기다리겠다.


8. [표 2]도표중 <沈아기>가 아니라, <池아기>이다.

9. 8페이지에서 [표 2]의 인물을 소개하였는데, 가능하면 『좌포청등록』에 있는 강원도 인물들에 대한 기술 내용을 충분하게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10. 10페이지에서, "……같은 시기의 순교기록인 『치명일기』ㆍ『병인치명사적』ㆍ『박순집증언록』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심능석 이외에는 없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 [예컨대], 강원도로 피난한 자도 있고, 강원도 사람도 있다.

■ <강원도로 피난한 사람>:박 마르타와 박 마르타 며느리(박 마르타의 아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 <강원도 사람>:김 요셉, 김 시몬, 박 바르바라, 이효신 등

[교난(敎難) 때 강원도로 피신한 자들]<『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현대문 p. 78.ㆍ고문 색인 p.289.>

정리번호 12. [치명일기 43]

[서울 칠패(七牌) 살던 박 마르타 경포에게 잡힌 사기(事記)]

박 마르타ㆍ박 마르타 며느리 병인(1866) 풍파에 강원도 홍천 용수골로 피신하였더니, 무진년(1868) 2월에 경포가 와서 잡으니 마르타의 말이, "자네가 올 줄 알았네" 하고, 마르타의 아들 내외 함께 잡혀 가니라. 잡힐 때에 똑똑히 본 사람은 황 야고보로, 황 야고보가 지금 살기는 광주(廣州) 조곡이라. 그때 또 본 사람은 원주 부흥골 이 안토니오라.

마르타의 며느리는 포졸들이 잡아가지 않으려 한즉 자원으로 따라가 치명하니라. 마르타는 장 주교 식복사하고 또 신부 식복사. 박마르타의 아들도 포함시켜야 한다.(方)

정리번호 73. [치명일기 384]<『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현대문 p. 132>

김 요셉 중윤은 본디 강원도 사람으로서, 죽산 가서 살다가 본읍 포교에게 잡혀, 수원으로 가서 치명하니, 나이는 50세더라.(더위골 회장의 아버지).

[치명일기 63]<『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고문ㆍ색인 p. 281.

김 시몬, 40세.

강원 양구 하안 거주.

순교지 서울.

순교일 1870년 봄.

정리번호 162. [치명일기 161]<『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고문ㆍ색인편 p. 290.>

박 바르바라

강원 횡성.

순교지 서울.

순교일 ※1868. 10.

이효신(李孝信), 요한, 남.

강원 평강.

순교지 서울.

정리번호 145.

치명일기 58.

11. 인물 분석이 너무나 평면적이다. 평면적이긴 하지만, 受敎의 동기라든지, 誦習한 經文이라든지, 逢見한 神父나 기타 傳敎 인물, 捕廳에서의 진술 내용과 立場등에 대한 綜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12. <강원도 횡성 둔내 치명기> 정리번호 84. (『병인박해순교자증언록』현대문편 140쪽)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관재 내외가 출포 일패에게 잡혀 갈 때 박 요셉은 56세에 영정(營庭)에 잡혀 가서 영형(營刑) 7,8차례에 배주하라 하니, 이는 본디 평상시에 치명하자고 공부 지절(至切)히 하더니, 이때 주은(主恩) 입어 약한 몸 좌우에서 군사들이 소리를 질러 형장(刑杖) 1차에 피가 흘러 버선에서 넘어 땅이 젖고, 이 모양으로 2,3개월에 한달이면 3번씩 버선을 보내심과 편지를 보면 천주께 기구하여 치명 속히 하게 해 달라 하고 엄형 많이 받더니, 나의 보속(補贖)이 더욱 즐겁고 치명 정일이 20여일 남았으니 매우 즐겁다 하더니, 이 편지를 보면 식구와 타인을 막론하고 통곡치 아니하더니, 이는 본디 조선의 대성(大姓)이요 대대로 명의 집안인고로 경향에서 명의로 인자함이 유명한고로 이때 영문의 본관 정원화의 병이 위중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의약을 무수히 쓰되 무효한지라, 그중에 아는 아전이 있어 “옥중의 죄인 박생원이 명의(名醫)이오니 보게 하옵소서.” 그 말을 듣고 즉시 이방을 보내어 모셔다가 보니, 즉시 병이 나은 후에 영(營) 본관이 나라에 주달 간구 후 치명 대신으로 평안도 희천 1,200여리에 정배(定配)간 지 〇만에 나라에 경사 있어 풀려 서울 동네 문안에서 유다스를 만나서 그전 친구로 알고 손을 잡으며 “다시 만나보니 이는 천당에서 보나 진배없다.”하고 길이 탄식할 때, 유다스 포교 말이 남산을 보고 웃으면서 “이제야 서학꾼의 괴수 잡았다.” 하고 포청으로 묶어 가니, 그때 고향과 타성 교우 7,8인 소초ㆍ둔내ㆍ행우촌의 팔촌 박 사도 요한ㆍ육 카타리나와 이치산(李治山) 3인이요, 정금리 대숲 사는 10촌 박 방지거 내외와 저구리골 윤서방 내외와 원주 서지 사는 박 사도 요한의 아내는 요셉의 계수라. 이때 수백인 다 열심 교우라 포청에서 서로 반가이 만나 주 은혜를 사례하고, 서로 권면하며 다 모여 치명하러 나갈 적에 열심히 열품도문(列品禱文)과 경문을 외우며 나가는 것을 보고 하졸의 말이, “죽으러 가는 놈들이 즐거움이 있어 좋아하느냐.” 하고 능욕함을 보고 적근리 횡성 우밀 사는 전장철 아버지와 오상골 김회장의 부친 안토니오도 그 말함을 들었나이다.


<1896년 1월 10일. 근엄이 박회장 베드로의 기록>


박 사도 요한. 남.

강원 횡성 둔내

순교지 서울. ※1868.10.

정리번호 84, 162.

치명일기 160?.


박사도 요한 아내. 여.

강원 원주 서지

순교지 서울. ※1868.10.

정리번호 84.


박 요셉. 남

강원 횡성 둔내<적근리, 횡성 우일>

순교지 서울. ※1868. 4.

정리번호 84, 161ㆍ162.

치명일기 158?.


육 카타리나, 여.

강원 횡성 둔내

순교지 서울

정리번호 84.

치명일기 162?.


이치산(李致山)

정리번호 84.

치명일기번호


박 프란치스코

정리번호 84.


박 프란치스코 아내

정리번호 84.


윤 서방

정리번호 84.


윤 서방 아내

정리번호 84.


<김주영 신부님께>

다른 사람의 논문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더욱이 본인의 용인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과정에 있는 젊은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같아서는

4월 4일, 본인을 직접 만나서 의견을 나누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이 생각되어

구체적 얘기는 생략하고 몇 가지 참고 자료만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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