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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둑삭둑’ 마법같은 가위질 30년, 머리 손님들과 정도 ‘차곡차곡’

by 문화홍보국 posted Jun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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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둑삭둑’ 마법같은 가위질 30년, 머리 손님들과 정도 ‘차곡차곡’

[타인의 삶] (6) 명동 헤어뱅크 윤정훈 원장


2022.06.12 발행 [1666호]

▲ 윤정훈 원장은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단순히 미용 서비스를 사고파는 게 아니라 손님과 한 공간에서 최소 30분, 많게는 3~4시간 대화하며 서로 교감을 나누고 공감하는 직업 같다”고 웃었다.


살면서 가족만큼 얼굴을 자주 보는 사람이 있다. 헤어디자이너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소중한 머리를 맡기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주변 이웃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타인의 삶’, 명동 헤어뱅크 윤정훈(마르티노, 서울 이태원본당, 49) 원장을 만났다.



상남자, 가위를 들다

서울 명동 인근에 이런 한적한 장소가 있을까. 헤어샵에 들어가는 입구가 두 곳이다. 하나는 건물 사이를 통과해 나 있고 다른 한 곳은 길보다 지대가 낮아 잘 보이지 않는다. 샵 내부에서 창밖을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청량감을 준다.

영업 시작 1시간 전, 샵 내부는 윤 원장과 헤어디자이너이며 부인인 전은애(그라시아, 47)씨, 매니저이자 처형인 전은이(바틸다, 49)씨만 오갈 뿐이다. 윤 원장은 “보조 직원도 없이 가족끼리 헤어 컷과 염색, 파마, 사무, 청소 등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니 하루가 짧다”며 분주히 움직였다.

윤 원장의 헤어디자이너로서의 삶은 18살에 시작됐다. “상업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기술을 배우고 싶었고 일찍 일하고 싶었죠. 그때 학교 앞 미용실 누나가 이 직업을 권했어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남자에게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낯설었다. 가족도 말렸고, 친구들도 남자다운 성격의 윤씨가 가위를 잡는다는 것을 의아해 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미 결심이 선 후였고 윤 원장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재능이 있었고 스승들에게 배우는 게 빠르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에 헤어디자이너 면허증을 취득했다. 목표가 있기에 샵 청소와 빨래, 샴푸 보조를 하는 5년간의 세월도 끈기로 버텼다. 공군에 입대해서도 관사의 작은 미용실에 배치돼 가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7년 만에 헤어디자이너가 됐고, 윤 원장을 찾는 단골손님도 점점 늘어갔다.

“서울 청담동 샵에서 일할 때는 SG워너비, 코요테, 배우 원빈, 신민아, 강동원의 머리를 만졌어요.” 신인 가수 그룹 중에 윤 원장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영화 촬영장 배우들의 전속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한 달 넘게 출장도 가고, 해외도 나갔다. 서울 명동에 큰 헤어샵을 차려 직원을 18명까지 두기도 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일해도 명동의 높은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윤 원장은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명동 샵을 정리하고 지금의 자리로 이사왔다”며 “기존 샵이 있던 건물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폐쇄되기도 했다.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면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윤정훈 원장.



단골손님의 또 다른 이름, 가족

샵 오픈 30분 전, 윤 원장이 미용 가위의 날을 손으로 잡아 감싼다. “가위가 날씨에 따라 날이 선 정도가 달라 날을 잡아 온도를 조절하기도 해요. 가위는 머리를 자를수록 날이 서 좋고, 빗도 오래 쓸수록 좋아요.”

헤어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선 지 30년, 그래도 첫 손님의 머리를 해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긴 머리를 가진 여성 분이었는데 2시간 넘게 머리카락을 잘랐어요. 너무 긴장했죠. 그때 인연이 되어 20년 넘게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죠.”

윤 원장의 손님들은 거의 20년 이상 된 단골들이다. 윤 원장이 손님에게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알아서 찾아주기 때문이다. 손님의 두상도 알고 좋아하는 스타일에도 훤하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의자에 앉아도 머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살다 이사 간 분들도 지방에서 많이 오세요. 해남에서 오시는 분도 있고,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분도 계세요. 단골손님과는 주로 건강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여기가 편하니까 다른 곳을 못 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손님도 있다. 손님은 어릴 때부터 두통이 심했다고 말하곤 했다. 윤 원장은 흘려듣지 않고 “MRI 찍어라, 별일 아니면 내가 돈을 주겠다”고 권유했다. 검사 결과 지주막하 출혈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으셨죠. 손님 중에는 의사분도 계시고, 좋은 병원이 있으면 연결해 드리기도 해요. 어릴 때 샵에 온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 시집, 장가가서 아이를 낳고, 대학 보내고…. 김장을 담가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손님들과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죠.”



▲ 윤정훈 원장은 많을 때면 하루 남자 손님 30여 명의 머리를 손질할 때도 있다. 그러기 위해 기존 가위보다 길고 무겁게 제작한 특수 가위도 사용한다.


하느님과 인연의 시작

윤 원장 집안은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다. 윤 원장에게 아내가 계속 성당을 가자고 졸랐지만 개종하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함에 가끔 불편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사달이 났다. “아내가 뇌 쪽 혈관이 터져서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내가 믿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했죠. ‘살려만 주시면 세례도 받고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현장에서 98%가 사망하고 1%가 병원에 가다 숨을 거둔다는 위험한 상황, 병원에서도 야심한 밤이라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때 한 단골손님의 남편이 뇌수술 전문의인 게 떠올랐다. 새벽에 전화를 걸었고 손님은 윤 원장을 돕기 위해 가족처럼 나섰다. 아내는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아내가 퇴원 후 식탁에 놓은 말씀 달력에서 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이렇게 모두 그의 집과 재산을 멀리 털어 버리실 것이다.”(느헤 5,13) 놀라웠다. 아니 무서웠다. 윤 원장은 그 길로 예비 신자 교리반에 등록하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 제 옷 입는 스타일이 난해했어요. 사슬이 달린 옷을 입고 교리실 맨 앞에 앉아 신부님을 뚫어지라 보며 교리를 열심히 들었죠. 신부님이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머리 하러 한 번 오시라고 했죠.”

윤 원장과 사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소문이 나며 샵을 찾는 사제들이 늘었다. 많을 때는 300여 명, 지금은 150여 명의 사제가 윤 원장의 샵을 찾는다.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도 윤 원장의 단골이며, 고 정진석 추기경도 교구청과 혜화동 주교관으로 찾아가 머리를 손질했다. 처음 샵을 찾는 사제들은 선후배 사제에게 “가서 어떻게 해달라고 하면 되냐”고 묻기도 한다. 답은 늘 똑같다. “그냥 앉아만 있어라.” 샵을 정리하던 윤 원장이 멋쩍게 말했다. “한 신부님이 우스갯소리로 본인이 믿는 분이 딱 세분 있다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느님, 성모님, 그리고 원장님.”

주말에 종일 샵에서 일하지만, 주일 새벽 미사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본당에서 활동은 못 했지만, 천주교에서 하는 공부방, 쉼터 등에서 미용 봉사도 많이 했다. 윤 원장은 “아내가 신부님들 만나고 제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고 웃었다. 요즘은 은퇴 후의 삶도 고민 중이다. “여성 헤어디자이너면 나이 들어서 동네에서 미용실도 운영하지만, 남자의 경우는 은퇴가 빠르더라고요.”

오전 11시, 첫 손님이 의자에 앉고 윤 원장이 가위를 든다. 손님의 머리카락을 향해 뻗는 손에 주저함이 없고, 손님 표정에는 평안함이 배어난다.

“머리 끝나고 손님이 환하게 웃을 때 가장 행복해요. 아, 은퇴 후에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신부님들 머리 손질해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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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원문보기: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25553&path=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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