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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하노불’과 ‘발고여락’… 노승이 청평사 온 까닭

by 문화홍보국 posted Jan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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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하노불’과 ‘발고여락’… 노승이 청평사 온 까닭


2022. 1. 11.

인터뷰┃청평사 신임 주지 도후스님
속초·인제·고성·양양·철원 등
강원 주요 사찰 거쳐 다시 춘천
죽을 각오로 한 정진 도움 돼
지친 심신 위한 공간 주고 싶어
불교 박해 전두환 백담사 일화
지친 나그네의 고해성사 같아
종교인·시민과 함께 길 찾을 것

▲ 조계종 원로의원 도후스님이 최근 춘천 청평사에서 본지 기자를 만났다.오래 전 교구 본사 주지를 지낸 스님이  일선 사찰에 부임했다는 소식에 벌써 지역 불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스님은 오히려 “좋은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 조계종 원로의원 도후스님이 최근 춘천 청평사에서 본지 기자를 만났다.오래 전 교구 본사 주지를 지낸 스님이 일선 사찰에 부임했다는 소식에 벌써 지역 불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스님은 오히려 “좋은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조계종 원로의원 도후 대종사가 지난 달 춘천 청평사 주지에 취임했다. 인제 백담사, 고성 건봉사, 철원 심원사, 양양 낙산사 주지 등을 지낸 스님의 은사는 신흥사 중흥조인 성준스님이다.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강원 불교계에 평생 헌신해 온 스님은 불자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아픔을 나누고 시민들의 삶을 함께 키우는데 관심이 많다. 굽이진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은 험했지만 스님을 만난 뒤 산사를 내려오는 마음은 한껏 청량했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시고 대종사이신데, 청평사 주지로 부임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속랍(세속 나이)도 그렇고 법랍(출가하신 후 나이)도 그렇고 해서 낙산사 주지 직을 끝으로 사실은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노승으로 한가하게 이제 수행 여정이나 삶의 여정을 정리하면서 지내고 싶었어요. 포교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스님들도 많고, 교구 본사 주지도 이미 오래 전에 역임하고 해서 정리를 하면서 지내고 싶었지요. 그런데 한국 불교 현실에서 활발하게 수행도 하고 포교도 하고, 사회 활동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일선에서 만나 후원도 하고 싶고, 남은 생은 불교 발전이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일조하고 싶기도 했지요. 그래서 청평사 주지 소임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런데 아직은 구체적인 사안이나 방편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많이들 좋은 길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청평사 주지 소임을 맡아 오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12월 중순에 취임해서 오다 보니 눈이 쌓여 있어서 운전해 오는 데 애를 좀 먹었어요. 올라오는 길도 좁고 험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는데, ‘봄·여름·가을까지 네 계절을 다 만나고 나면 아주 아름다운 도량이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또 역사적으로도 청평사는 매우 특별한 배경을 지닌 도량입니다. 고려시대 창건된 천년 고찰이고, 유일하게 고려시대 연못 터를 보유한 곳이기도 하죠. 대학자인 이자현 선생 자취도 스며있고, 보우국사도 주석했고, 상당히 특별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에요. 또 수도권에서도 가까워서 여유로운 환경을 찾는 분들에게는 템플스테이 등을 통한 여건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원하는 분들은 불자든 아니든 요즘은 휴식형을 선호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시간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차도 여유 있게 즐기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불교 문화도 접하게 될 것이고,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 지면 수행을 통한 자비의 실천이라는 불교 본연의 목표에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 듯 해요. 자비 실천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도움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발고여락(拔苦與樂)’, 고통은 덜어주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종교인의 삶입니다.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생각대로 잘 될지 모르겠고 조심스럽기도 해요. 그래도 앞장서서 작은 역할이라도 한다면 후배 스님들도 마음을 내지 않을까 합니다. 지역 스님들과 종교인, 신도들, 시민들과 함께 길을 찾으려고 해요.”

-출가 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80년 대 초까지만 해도 상당히 병약했어요. 그러다보니 다른 스님들보다 심신도 약했고, 그래서 어느 날 굳게 마음 먹고 홍련암에서 백일 기도를 시작했어요. 한 번 들어가면 두 시간 씩 정진을 하는데, 사분정근이라고 해서 이것을 하루에 네 번씩 해요. 그렇게 하루 8시간씩 기도하는데, 백일 기도가 끝나갈 무렵 급성 맹장염에 걸렸어요. 도저히 기도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오기라고 해야하나 그나마 정진했던 힘이라고나 할까, 또 기도하다 죽으면 극락왕생을 하든지, 새로 태어나면 건강하게 태어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이어갔어요. 그 당시 신도 한 분이 양양의 의사였는데, 진통제를 좀 달라고 하고 기도를 마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 때 낙산사 스님들이나 신도들은 다 난리가 났어요. 아직 젊으니까 수술을 먼저 하고 몸을 고친 후 기도를 이어가라고 했지요. 그래도 나는 기도하면서 부처님께 투정도 하고, 애원도 하고, 기도 마칠 때까지 만이라도 통증을 멈춰달라고 하며 기도를 마쳤어요. 그 뒤에 내가 가진 능력을 넘어서는 일인데 교구 본사인 신흥사 주지도 하고, 또 BBS 불교방송 이사장을 맡아서 IMF 경제 위기 속에서도 경영을 맡아서 나름대로 잘 해 내기도 했어요. 젊어서는 백담사 주지를 했는데, 주지 초기에 돈이 좀 생겼어요. 그 때는 마치 혹 덩어리 같았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지역을 위해 써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백담사 주지를 하면서 보니까 군 부대가 많은 원통 지역에 사찰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작정하고 부지를 찾았습니다. 마침 그 때 사단장이 군 법당을 짓도록 부지도 내 주고 했어요. 사병들도 그 뒤에 가까운 곳에서 마음껏 신행 활동도 하고, 참 잘했다 싶어요. 하여튼 내 지은 복이나 공덕에 비하면 비교적 많은 일을 이루고 살았어요. 이것이 아마 그 때 죽을 각오로 부처님께 매달리고 신심으로 정진했던 그 공력이 아닌가 싶어요.”

-전두환 씨가 백담사에 기거할 때 당시 주지로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사실 그 분이 백담사에서 머물던 시절 얘기는 하지 않는 편이 옳다고 생각해요. 있으면서 나한테도 많은 얘기를 했는데, 그건 천주교 신자가 고해성사 한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백담사로 들어올 때 기자들이 질문을 했어요. 1980년대 불교가 상당히 박해를 받았는데 어떤 심정으로 받아 들이셨냐, 이렇게 질문을 해요. 그래 제가 그랬지요. 말하자면 지친 나그네가 심신이 고달파서 절에 머물다 가겠다고 하는데, 친소를 따지고 종교를 따져서 거절할 수는 없다고 그랬더니 그 이후에는 그런 얘기들이 일체 나오질 않았어요.”

▲ 춘천 청평사 주지 도후스님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 춘천 청평사 주지 도후스님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성탄절을 앞두고 천주교 춘천교구를 방문하셨습니다. 춘천지역 여러 종단 사찰·스님들과도 폭넓게 활동을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좁게는 종단을 떠나서 불교는 다 부처님 가르침을 닦고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넓게는 모든 종교가 다 이웃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선 춘천 지역 모든 불교 종단, 모든 종교가 다 화합하고 힘을 모아 시민들을 위한 길을 찾고,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평사는 사실 역할을 많이 해야 하는 사찰이에요. 조금 더 상황이 정리되면 불교대학이나 시민 선방도 하고 싶고, 문화센터 등을 통해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임인년 새해입니다. 강원도민과 지역 불자들께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본래 속가는 강원도가 아니지만, 인제·고성·양양·철원·속초에서 대부분을 살았고, 이제는 춘천까지 와서 살게 됐어요. 그러니 강원도민으로 일생을 살고 있는 것인데, 강원도민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우리 강원도 분들은 참 착해요. 그래서 옛날부터 암하노불(巖下老佛)이라고도 해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비유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질고 도량이 넓은 분들이라고 느끼고 살아왔어요. 코로나19 상황이 매우 위중한데도 꿋꿋하게 잘 참아내시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모쪼록 새해에는 이런 정신으로 행복하게 사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바라요.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진행·정리/김진형 formation@kado.net

◇도후스님 프로필

1968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신흥사에서 사미계, 1974년 법주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법주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인제 백담사, 고성 건봉사, 철원 심원사, 양양 낙산사, 속초 신흥사 주지 등을 지냈다. 조계종 총무원 규정부장, 불교신문 주간, 불교방송 이사장, 춘천불교방송 사장, 제12·13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 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한 공로로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주관한 생명나눔대상 나눔상을 수상했다.


강원도민일보 원문보기: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07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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