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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에서 나온 신학생복과 묵주... 공산주의자로 몰려 죽은 선교사
김포군 고촌공소 송해붕의 죽음... 야학 열었다 지역유지들이 모함

21.04.03 11:44


 고촌 제자들과 강당 앞에서 송해붕 선교사.
▲  고촌 제자들과 강당 앞에서 송해붕 선교사.

1952년 7월. 14세 소녀 송해숙은 천주교 선교사였던 오빠 송해붕의 시신을 찾기 위해 천등고개를 올랐다.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현재는 김포시 고촌읍)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km 가니 천등고개가 나왔다. 높지는 않은 곳이지만 한여름이라 일행들의 얼굴은 땀으로 번질거렸다.

김포 천등고개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은 진작 있었지만 학살 당시인 1950년 10월에는 시신을 수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빨갱이가 죽어 묻혔다는 인식에다 고촌지서의 감시 때문이었다.

그날 송해숙 가족과 천주교 고촌공소 신자, 송해붕의 제자 약 200명이 시신 수습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지난달 재판 덕분이었다. 즉, 1952년 6월 28일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의 '송해붕 외 5인 살해 및 사체유기' 재판에서 치안대원 및 고촌지서 순경이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송해붕이 불법적으로 학살당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가족과 관련자 들이 시신 수습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시신수습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학살 지점을 명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고촌성당에 묻힌 송해붕 선교사

 선교사 송해붕
▲  선교사 송해붕


송해붕을 학살해 실형을 선고받은 임OO 등의 치안대원들은 법정에서도 학살 장소를 이실직고하지 않았다. 결국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고, 학살지를 찾는 것은 유가족의 몫이 되었다.

일행은 십여 명씩 나뉘어져 천등고개 이곳저곳을 삽과 곡괭이, 가래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송해숙이 있는 곳에서 "아"하는 탄식이 터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구덩이에서는 여성으로 보이는 유해가 나왔다. 살은 썩었지만 머리카락, 옷가지 등은 그대로였다. 잔인하게도 머리카락은 전깃줄로 위로 묶여 있었고, 두개골 주변에는 핏자국이 널려 있었다. 주변에는 피가 묻은 돌멩이가 보였다. 

고촌지서에서 전깃줄로 머리카락을 위로 묶어 고문을 가하다가 천등고개에서 총으로 쏜 다음 그것으로도 모자라 돌멩이로 머리를 짓찧은 것이었다. 참혹한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누구의 시신인지 알 수 없어서 수습을 하지는 않고 다시 흙으로 묻었다.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시신이 발견되었지만 송해붕의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한나절(약 4시간)쯤 지났을 때 "여기 선교사님이 있어요!"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든 곳에는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 아래로 신학생복이 보였다. "오빠", "요한아", "선교사님"을 외치는 목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요한은 송해붕의 세례명이었다. 송해붕의 윗주머니에서는 묵주가 나왔고, 평소에 찼던 허리밴드도 그대로 있었다. 2년 가까이 천등고개에 묻혀있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1950년 10월 12일 새벽 0시에 학살된 시신이 세상의 빛을 본 때는 1952년 7월경이었다. 이날은 시신을 인근에 가매장했는데 경황이 없어 시신 매장지를 미리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송해붕의 유해가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56년 6월 15일의 일이었다. 계양 선산으로 이장을 하던 날, 소복을 입은 여성과 천주교 고촌공소 어린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 하관미사를 때 송해붕의 부친 송희진은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고 참석자들은 통곡을 했다. 이후 송해붕의 유해는 1999년 4월 김포성당 묘지로 이장했다가 2004년 3월 9일 고촌성당 동산에 이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촌성당 내에 있는 송해붕의 묘
▲  고촌성당 내에 있는 송해붕의 묘


인민군 사격연습했는데...

경기도 김포는 3.8선 접경지역으로 전쟁 3일 만에 북한군에게 함락됐다. 마을에 들이닥친 인민군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밥을 해달라고 했고 부상당한 군인들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1950년 7월 인민군은 의용군 모집을 시작했다. "김일성대학에 보내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참가한 이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수가 강제적으로 끌려갔다. 송해붕의 동생 송해용(1929년생)은 후자의 경우로, 7월 10일 강제로 끌려갔다.

동생이 끌려가자 송해붕은 천주교 고촌공소 강당 옆에 굴을 팠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송해붕은 밤에는 산언덕 콩밭으로 가 바위틈에 숨어 잠을 잤다. 또 송해붕은 김포군 양촌면 누산리로 피신을 하기도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선교사였으며 김포군 고촌공소 창립자였던 송해붕은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봤을 때 북한군에게 협조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1950년 9월 말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탈환 전투를 벌일 즈음 송해붕은 고촌의 한 굴에 있었다. 송해붕의 5촌 조카 송영식의 증언이다.

"인공 때 동네 수수밭에서 국군이 버리고 간 MI 총 세 자루와 칼빈 총 한 자루를 주웠어요. 공깃돌(小石. 송해붕의 아호) 선생한테 그 말을 했더니, 고촌으로 가지고 오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것을 대빗자루 만드는 대싸리 잎새 사이에 잘 숨겨가지고 걸망으로 메고 갔지요. 지름길로 가면 빠르겠지만 일부러 한적한 길로 돌아서 갔어요.

선생님은 그 총으로 제자 몇을 데리고 굴속에서 사격 연습을 하셨지요. 국군들이 일선에서 싸우고 있으니, 우리도 후방에서 싸울 수 있으면 싸우도록 준비를 하자는 거였어요. 그런 분이 웬 공산당입니까? 환도 후 너무 억울하니까 그냥 있을 수 없다며 당숙 댁에서는 임○○ 씨 등을 상대로 재판을 걸었지요.(안영, 『스물넷, 못다 사른 불꽃』)"

천주교 신자(황〇〇)의 집 벽장에 숨어 낮에는 굴에서 사격연습을 하던 송해붕은 1950년 10월 10일 오후 3시 치안대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 고촌면사무소 양곡창고에 구금되었는데, 그곳엔 이미 수십 명이 있었다.

창고 안은 연일 비명소리로 아우성이었다. 송해붕의 제자 임병열도 연행됐다가 창고 안에서 송해붕을 만났다. 임병열은 치안대원과 지서 경찰들에게서 "송해붕을 따르지 마라"고 강요당하며, 창고에서 3일 동안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 그는 다른 주민들이 전깃줄로 손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는 것도 목격했다.(진실화해위원회,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그렇다면 송해붕은 치안대에 왜 연행됐을까? 당시 치안대와 경찰은 송해붕이 '고촌면 면장 암살을 기도하고, (고촌면 천주교) 신자에게 적기가 등을 가르쳤다며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1952년 6월 28일, 서울지방법원 인천지원 형사합의부, <임OO 외 판결문>, 형공 제351호)

하지만 송해붕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고 인민군을 상대로 교전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는 또 수복하는 국군을 환영하려 제자들과 감자로 태극 문양을 만들어 태극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송해붕이 치안대에 공산주의자로 밀고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기존에 개신교를 믿던 고촌면의 한 성씨 지도자들(지역 유지 그룹)은 6.25 전부터 천주교 선교사였던 송해붕을 질투하고 질시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송해붕의 야학과 선교에 관심을 갖고 지역의 지도자로 받들자 그들은 송해붕을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송해붕을 학살한 이들은 훗날 재판을 받고 실형까지 선고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51년 연합국 일원이었던 벨기에 군인들이 계양초등학교 운동장에 주둔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군종신부 주관으로 미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송해붕 선교사 사건을 접하게 됐다.

사병 조지가 이 경악스러운 이야기를 군종신부(중령)에게 전했는데 이후 군종신부는 고촌지서와 김포경찰서에 가 항의하고 조사를 촉구했다. 군종신부는 송해붕의 가족에게 경찰서에 진정을 넣도록 권유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가족은 진정서를 제출했고 인천지검이 정식으로 기소해 형사재판에 이를 수 있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움터 열어

송해붕은 계양국민학교와 인천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한 후 성직자의 길을 가기 위해 1944년 원산 덕원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시엔 신학교에 입학하려면 해당 교구 주교의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데, 노기남 주교는 송해붕에게 "너는 장남이고 가계를 이어야 하니 취업을 하라"고 했다. 성직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송해붕은 경성(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서 다섯 시간 무릎 꿇고 있었다. 다음날 노기남 주교는 송해붕의 부모를 만나 최종 허락했다.

하지만 신학교에서의 배움은 쉽지 않았는데 라틴어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고, 방학이라 집에 왔던 송해붕은 3.8선이 그어지는 바람으로 신학교가 있는 원산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송해붕은 성직자가 아니라 천주교를 전파하는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는 계양면 굴현리에서 야학을 시작했는데 1949년에는 고촌에 공소강당 겸 야학교사를 건립했다. 그의 열정은 주민들을 감화시켰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다.

"억울하게 죽은 오빠, 복자가 되기를"

1997년 7월 김포군 고촌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차동엽(노르베르또) 신부는 50년 전 고촌 토박이들에게 신앙의 씨를 뿌렸던 스물네 살 청년 송해붕을 알게 됐다. 고촌 어느 마을을 가던 송해붕, 송해붕 하는 것이었다.

송해붕은 고촌 사람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죄로 스물네 살에 천등고개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순교했다. 차동엽 신부는 송해붕 선교사를 복자(천주교에서 공경할 만한 성도에게 붙이는 존칭)로 추대(시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쉽지 않았다.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자가 복자 자리에 오르는 것은 드물었다. 시복은 교황이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 높은 사람을 복자품(福者品)에 올리어 특정 지역의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송해붕의 여동생 송해숙(85세,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은 "오빠가 복자가 되고, 나중에는 성인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송해붕이 진실규명되긴 했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역사의 순교자로 자리매김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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