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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웃 우선으로 돌본 한국교회 첫 번째 사회교리 실천가

[성 요셉의 해, 우리 시대 요셉을 찾아서] (1)최경환 성인


2021.01.10


▲ 최경환 성인의 초상화.




▲ 수리산 성지 최경환 성인 묘소. 최양업 신부는 수리산을 들를 때마다 아버지 묘소를 찾아 정성껏 기도하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교육보다 10달 태교가 더 중요하고 이보다 수태 전 부모의 마음과 몸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도 “자식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구원을 받을 것”(집회 3,1 참조)이며 “자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에페 6,1-4 참조)고 가르친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도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내어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51-52 참조)고 복음서는 증언하고 있다.

보편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의 해를 맞아 자녀들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들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회로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4~1839) 성인을 소개한다.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성교(聖敎)하는 사람이라. 너희도 성교를 하려거든 (최경환) 프란치스코같이 하라.”

기해박해 당시 신자들과 함께 옥살이하던 한 도적이 교우들에게 한 말이다.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성인의 성품이 어떠했길래 도적마저 이런 말을 했을까?

최양업 신부를 알기 위해선 그의 아버지 최경환을 살펴야 하듯이 최경환 성인을 알려면 그의 집안 특히 그의 아버지 최인주의 인물됨을 먼저 보아야 한다. 최경환 성인의 아버지, 즉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 최인주는 고결한 사람이었다. 가정도 부유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 때 많은 고초를 겪은 후 석방됐다. 그는 순박하고 신심이 뛰어났다. 가난한 친척들과 이웃에게 미리 알아서 도움을 줬다. 또 자기 종들에게 자신을 “영감님”이라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다. 최인주는 세 아들에게 세 가지 유언을 남기고 선종했다. △서로 무엇을 줄 때 거저 주어라 △보증을 서거나 혼인 중매를 절대로 서지 마라 △이웃과 항상 화목하게 지내라.(최양업 신부, 1851년 10월 15일자 서한 참조)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후 주님의 가르침대로 신분 차별을 거부하고 하인을 친자녀처럼 사랑으로 보듬고 가난한 이웃과 친지들에게 자선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심을 아들 최경환이 그대로 흡수했다.



철저한 신앙인

최양업 신부는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천성적으로 진정한 신앙의 실천자였고, 정직과 순박을 애호하면서도 강력한 성품을 타고나셨다”고 회고했다. 최경환은 어릴 적부터 세상의 오락을 경멸하고 교리를 듣거나 읽는 것만을 즐겼다. 가장이 된 그는 가족이 신앙생활에 냉담하자 고향과 재물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하기 편한 곳으로 이사했다.

최양업 신부는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범을 더욱 철저하게 따르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만족해하며 살았던 분”이라고 했다. 최경환은 교회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남들이 감탄할 만큼 형제들과 화목하게 살았다. 어머니께 효도를 다 했고, 아랫사람들을 자상하게 보살폈다. 매일 규칙을 정해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영적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고,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아침ㆍ저녁 기도를 빠트리지 않았다.

최경환은 배운 것은 많지 않으나 평소 자주 묵상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신심서적을 읽으며 회장으로서 교우들을 가르치기에 힘썼다. 교리가 해박한 사람으로 소문이 퍼져 박식한 신자와 유식한 사람들까지 그의 강론을 들으러 왔고, 까다롭게 꼬치꼬치 따지는 비신자들까지도 그의 지식에 설복돼 돌아가곤 했다.

최경환은 밭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 가족을 돌볼 때나, 길에서 누구와 담화를 할 때도 항상 교리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육신을 가꾸는 일이나, 세속적인 평판이나 관심, 현세의 사정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를 잡으러 온 포졸들에게 밥을 지어 음식을 대접하고, 남루한 차림의 포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옷을 내어주며 입으라고 하자 포졸들이 “이 사람과 이 가족이야말로 진짜 천주학쟁이”라고 감탄했다.


▲ 수리산 뒤뜸이 교우촌 1900년대 모습. 최양업 신부 가족이 살던 1830년대 후반에도 뒤뜸이 마을은 아마도 이러한 전경이었을 것이다.




빼어난 자선가

최경환 성인은 ‘한국 교회 첫 번째 사회교리 실천가’라는 평을 들을 만큼 가난한 이웃을 우선으로 돌봤다. 자신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최경환은 항상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백방으로 도왔다. 그는 살림이 어려운 가운데도 절약하고 아껴서 그 돈이나 물건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았다. 과일을 추수하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제일 나쁜 것이나 흠 있는 것을 골랐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나무라자 그는 “제일 나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이 불쌍한 장사꾼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이오”라고 답했다.

한 번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홍주에 있던 땅을 얼마간 팔아 돈을 마련해 돌아오는 길에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돈을 꿔준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본 최경환은 땅 판 돈으로 빚을 갚아주었다.

또 어느 날 최경환이 시장에 갔다가 진흙 개천에 떡판을 엎지르고 앉아 “이 떡을 팔아 어린 자식과 생명을 보존할 텐데 이 지경이 됐다”며 울고 있는 떡장수 할머니를 보고 그 떡값을 다 물어주기도 했다.

최경환은 또 수리산 교우촌 신자들을 설득해 성금을 거두어, 그들과 함께 50리를 걸어 서울로 올라가서 많은 순교자의 시신을 찾아 매장했고, 순교자 가족들을 돕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들

최경환 성인의 신심과 덕행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그의 맏아들 최양업 신부는 부친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받아 자신을 돌보지 않고 1년 중에 한두 달을 제외한 대부분 시간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돌면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다. 최양업 신부는 1849년 12월 입국한 직후부터 1861년 6월 15일 과로로 선종하기까지 무려 11년 6개월간 이러한 삶을 지속했다.

최경환 성인의 넷째 아들이자 최양업 신부의 셋째 동생인 최우정(바실리오, 1832~1886)은 병인박해 10년 후 조선에 입국한 블랑 주교의 지시에 순명해 여비도 없이 충청, 전라, 경상도 지방을 구걸하며 도보로 흩어져 숨어 사는 교우들을 찾아가 “선교사들이 입국했으니 교회로 모여와 성사를 받고 신앙생활을 재개하라”는 소식을 전했다. 최우정은 “끼니를 너무 많이 걸러 겨울철에 몇 번이고 굶어 죽을 뻔했고, 곳곳에서 겪는 모욕과 구박을 견디어 내며 끝까지 전교 여행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최경환 성인의 신심과 덕행은 지금도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최경환 성인의 현손(玄孫)인 최기식(베네딕토, 원주교구 원로사목자, 한국희망재단 이사장) 신부는 ‘썩은 밀알이 되게 하소서’라는 사목 모토를 정하고 사제로서 한평생 사회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 성인의 후손으로 10명이 넘는 사제와 10명이 넘는 수도자들이 본당과 사회복지, 해외 선교 사목 등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최경환 성인의 ‘애주애민’(愛主愛民)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원문보기: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94545&path=2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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