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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장 퇴임하는 김운회 주교

by 문화홍보국 posted Dec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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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장 퇴임하는 김운회 주교

“교구민과 만남이 가장 큰 기쁨… 수첩 들고 전국 성지 순례할 것”

맑고 아름다운 환경과 신자 속 ‘땡잡은’ 10년
고성 산불 마음 아팠지만 이재민 도와 뿌듯
북한·노인·청소년… 인내와 배려 필요한 사목

발행일2020-12-20 [제3224호, 13면]

12월 28일 은퇴 감사미사를 앞둔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신자들과의 만남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며 “그런 만남을 좀 더 많이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고 말한다.사진 박원희 기자

제7대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가 12월 28일 은퇴 감사미사를 끝으로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2010년 1월 28일 교구장 임명 당시부터 지금까지 11년 가까이 교구민들과 함께해 온 김 주교. 그가 교구를 이끌어 오는 동안 신자 수는 7만8089명에서 9만1281명으로 1만3100여 명이 늘었고, 인구 대비 신자 수 비율도 7.2%에서 8.2%로 올랐다. 교구 신학생 수도 배 이상 늘었고, 내년에는 처음으로 함흥교구 사제를 배출한다. 그간의 결실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교구장직을 떠나는 김 주교를 12월 10일 춘천 효자동 춘천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만나 소회를 들었다.


■ “땡잡았다”

“아주 그냥 정말 땡잡았다.” 춘천교구장으로 지내 온 10여 년을 돌아보면서 김운회 주교는 그동안의 삶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출신 사제로 도심에서 살면서 전원적인 풍경, 시골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이렇게 맑은 공기와 물, 산 등 환경을 즐길 수 있는 춘천교구에 와서 정말 행복했고, 그 환경에 어울리는 순박한 품성과 편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교구민들을 만나 행복했으며, 무슨 일이 있든 함께하는 사제들이 있어 항상 행복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 주교는 “교회 공식 행사나 부모님 초상 이런 일이 있으면 전 교구가 숫자가 적긴 하지만, 다 같이 기뻐하고 다 같이 슬퍼했다”며 “그런 것이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고, 그래서 아주 그냥 푹 빠져서 10여 년을 기쁘게 지냈다”고 말했다.


■ 만남이 가장 큰 기쁨

특별히 김 주교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교구 특성상 이곳저곳을 오가기 힘들긴 했지만, ‘신자들과의 만남’이 자신에겐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설명했다. 목자는 양들과 함께해야 하고, 함께하려면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 김 주교는 매년 작은 본당이라도 모든 본당을 찾아 견진성사를 주례하고, 공소에서도 미사를 집전하는 등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애썼다. 그때마다 자신을 반기며 좋아하는 신자들을 보며 김 주교는 기뻤고, 현재는 “그런 만남을 좀 더 많이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김 주교는 지난해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 사태가 재임 중 “제일 마음 아픈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피해 지역을 찾아 신자·주민들을 만난 김 주교는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고, 그들을 도울 방법을 강구했다. 그때 전국 각지에서는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성금을 교구에 보내줬고, 현장에 있는 신부들은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려 신자·비신자 할 것 없이 이재민들에게 골고루 성금을 지원해 줬다.

김 주교는 “그에 대한 고마움의 편지가 나한테까지 왔다”며 “벌어진 상황은 너무 안타깝고 아픈 일이지만, 이후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이뤄진 일들은 너무 감동적이고 감격스러웠고,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북한·노인·청소년사목 조언도

분단교구 교구장으로서 함흥교구장 서리도 맡아 온 김 주교는 남북 화해, 한반도 평화, 북한 선교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현재 인도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 해도 국내외 정치 등 외부 요인에 막혀 불가능한 상황을 언급하며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인내’를 갖고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주교는 “누구보다도 신자들이 북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한 동포로서 끌어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고령층이 많은 농촌 지역 교구장, 수십 년간의 청소년사목 경험으로 느낀 노인·청소년사목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노인들과는 ‘함께’ 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는 신앙 안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청소년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부모인 30~40대가 교회 안에서 잘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전국 성지 순례 소망

전임 고(故) 장익 주교와 후임 김주영 주교까지 “너무 좋고 훌륭한 분들”이라며 김 주교는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특별히 신임 김주영 주교에 대해서는 교구에서 자라 사제들과도 잘 알고, 밝고 일도 잘해 “교구를 나보다 훨씬 더 잘 이끌어갈 것 같다”며 두터운 신임을 표했다. 김 주교는 “다만 그분 그늘에 가려 내가 너무 빨리 잊힐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 주교는 교구 사제들을 포함한 신자들에게 “그저 감사하다”며 “삶이 행복했다”고 밝혔다. 교구장으로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신부들이 함께해 주었고, 신자들 역시 자신을 교구장으로 받아들여 환영해 주며 사목 지침에 열심히 따라 줬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김 주교는 “사랑해요”하고 신자들을 향한 마음을 표했다.

11월 초 허리 협착증 수술을 받은 김 주교는 현재 재활 훈련 중이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몸을 더 추스르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이 나아지면 전국 성지 순례를 할 계획이다. 김 주교는 “우리 신자들이 노트를 갖고 다니며 도장도 찍더라”면서 “나도 그렇게 노트를 갖고 다니며 도장도 찍고 성지 순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앞으로 전임 고(故) 장익 주교가 지냈던 춘천 실레마을 공소 사제관에서 지낼 예정이다.



◆ 김운회 주교는…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3년 사제품을 받았다. 동성중학교 교사와 서울대교구 가톨릭중고등학생연합회 지도 신부, 교리사목위원회 중고등학생 담당, 주일학교 교사연합회 지도 신부, 성소위원회 위원을 거쳐 서울 방배동·발산동본당 주임을 맡았다. 이후 서울대교구 성소국장과 사제평의회 위원, 성소위원회 총무, 성직자교육위원회 위원, 교육국장, 참사위원, 사제평생교육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동성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2002년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에, 2010년 1월 28일 춘천교구장 겸 함흥교구장 서리에 임명됐다. 2002년부터 10년 가까이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2012년부터 6년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을 맡아 왔다. 김 주교는 교구장 주교는 만 75세가 되면 교황에게 사의를 표명하도록 권고된다는 내용의 교회법 제401조 ①항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가톨릭신문 원문보기: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5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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