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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용순 회장 "장익 주교...하나됨을 위하여 헌신한 자애로운 목자"

by 문화홍보국 posted Aug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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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용순 회장 "장익 주교...하나됨을 위하여 헌신한 자애로운 목자"


2020-08-07 19:05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임용순(그레고리오) 춘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 있으면 함께 나누고자 한 자애로운 목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한국어 가르치신 분

한솥밥 운동, 한삶위원회 꾸려 매달 25일 `한삶` 미사 봉헌

대북 연탄, 옥수수 지원 등 통일 사목에 애써

사제 및 평신도 봉사자 양성 위해 주력

`성서백주간` 도입, 하느님 말씀의 생활화 이끌어

은퇴 후에도 번역 작업, 겸손하고 소박한 삶 실천


[인터뷰 전문]

엊그제 선종한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의 장례미사가 내일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됩니다.


교구민을 비롯해 장익 주교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주님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데요.


고인의 삶과 신앙을 이 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춘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임용순 그레고리오 회장 전화로 연결해서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임용순 그레고리오입니다.


▷많이 애통하시죠.


▶그렇죠. 모든 분들이 다 같은 생각일 겁니다.


▷장익 주교님 선종 소식을 듣고서 어떤 마음이 들던가요?


▶저는 병원에도 갔다 왔기 때문에 상황을 알고 있어서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8월 5일이죠. 수요일 아침에 주교님께서 아주 위중하셔서 오늘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다른 것보다도 평협을 맡고 있기 때문에 회장단 회의를 밤에 빨리 소집을 해서 장례 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 준비를 했었고요. 주교님께서 정신이 맑을 때 제가 지난 5월 16일이었을 겁니다. 주일에 주교님께서 미사를 주례한다고 해서 갔더니 몇 분 모시고 미사를 소파에 앉아서 하시는데 주교님 얼굴이 무척 야위신 거예요. 14kg이 빠지셔서, 이전에 뵀을 때보다요.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그래서 ‘주교님, 얼마 안 남으셨구나.’ 정말 그 느낌이 그 날 들어서 그때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지난 1994년 12월에 제6대 춘천교구장에 착좌하셨잖아요. 지난 16년간 교구를 이끌어오셨는데 교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고인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십니까?


▶우리 주교님은 참 훌륭하신 분인데 제가 기억하는 주교님은 좋은 것을 신자들한테 많이 나눠주려고 하는 그런 게 참 강하셨던 것 같아요. 가까이에서 이렇게 뵈니까 수시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은 책을 읽고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시기도 하고 그다음에 워낙 이 분이 외국어에 능하시잖아요. 독일어로 된 책,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많이 읽다가 좋은 구절이 이런 게 있으면 그걸 번역해서 워드로 쳐서 저한테 조금씩 잘라서 주시기도 하고 하여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좋은 말씀도 이렇게 에피소드나 이런 걸 나눠주시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우리 교우들한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드리고 나눠주고 싶어하는 자애로우신 분으로서 기억합니다.


▷뭔가 좋은 것 하나라도 더 교구민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그런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셨네요. 말씀하셨지만 장익 주교님께선 외국어에 능통하시고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신 분으로, 또한 김수환 추기경님과도 인연이 꽤 깊으셨잖아요?


▶맞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하고는 주교님 아버님이신 장면 박사하고 김수환 추기경님하고 사제지간이잖아요. 그렇게 해서 인연이 됐고 주교님 말씀 들어보면 80년대 초에 로마에 가 계실 때 공부하려고 잠깐 가 있을 때, 아마 1년 정도 로마에 가 계셨던 것 같아요. 그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거기에 오셨다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한국 방문을 하시게 되고 한국에 갔을 때 한국어로 미사를 하고 싶다고 하시니까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때는 장익 신부님이죠. 신부님을 불러서 ‘자네가 교황님이 한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드리게.’ 해서 그 명을 받고 장익 주교님이 어떻게 하면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 배울 수 있을까를 엄청 책을 많이 보면서 연구하셔서 교황님을 수십 번 찾아가서 그렇게 해서 가르쳐드리고 그것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하고 굉장히 친분이 생긴 것 같은데요.


주교님 계시는 주교관에 가보면 거실에 아주 큰 사진이 하나 있는데 그 사진이 뭐냐 하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하고 김수환 추기경님하고 그다음에 우리 장익 주교님이 젊었을 때 지금에 비하면 훨씬 젊었을 때죠. 세 분이 만나서 웃으시면서 아주 좋은 그런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만큼 바오로 2세 교황님하고 가까운 사이고 제가 알기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나중에 바오로 2세 교황님을 뵀을 때 교황님이 대통령한테 제일 먼저 물은 게 나의 한국어 선생님 잘 계시냐. 이렇게 안부를 물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장익 주교님을 특별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장익 주교님의 사목표어 ‘하나되게 하소서’입니다. 유일한 분단교구인 춘천교구의 어른으로서 현실적 고민이 담긴 사목표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하나 됨을 위하여 몸소 인도적 대북 지원 등도 실천해오셨잖아요.


▶`하나되게 하소서` 안에는 여러 뜻이 있겠지만 그중에는 아마 주교님께서 이북에서 오셨고 그런 것 때문에 북한 동포들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춘천교구가 분단교구이고 그런 것 때문에 특별하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실천해 왔는데 저희는 지금도 주교님께서 그 당시에 `한솥밥 운동`을 펼치셨고 그다음에 북한을 도와주기 위해서 6월 25일을 기억하면서 매달 25일은 저희들이 `한삶 미사`로 봉헌합니다. 평일이지만. 그리고 봉헌을 받고요. 그래서 이때 봉헌되는 헌금들을 다 모아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계획도 세우고 실천도 해왔는데 그중에 했던 것들이 연탄을 지원하는 건데 제가 주교님한테 여쭤봤어요, 나중에. 왜 하필 연탄 그 무거운 거를 북한에도 연탄 이런 것들 많을 텐데 하필이면 연탄을 선택하셨냐고 했더니 북한 사람들의 어려운 삶을 돌보고 싶은 것도 하나 있고 연탄을 지원하게 되면 연탄은 다른 거로 전용이 안 된대요. 그리고 이북의 도로 사정이 안 좋기 때문에 연탄을 싣고 어디 멀리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북강원도에 갖다 주면 그게 아무리 퍼져봐야 그 근처에서 퍼질 수밖에 없대요. 많이 먼 데로 가다 보면 그 연탄이 결국 부서지기 때문에 북강원도 쪽에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그런 걸 생각하셔서 연탄을 한 것 같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옥수수, 의약품 이런 것들을 지원을 많이 했죠. 그래서 연탄 지원할 때는 저도 마지막으로 2010년에 대북지원을 할 때 마지막으로 연탄 5만 장 갖다드리러 신부님 몇 분하고 평신도들하고 같이 갔다 온 적도 있는데 정말로 그때 갔을 때 저는 북한 하면 되게 무섭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북한군인들이 우리들이 키가 하나 정도가 작고 우리하고는 비교가 안 되더라고요.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 불쌍하다. 이런 생각이 들고 그때부터는 저도 대북지원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제 양성은 물론이고 평신도 봉사자 양성을 위해서도 고인께서 온 힘을 쏟으셨다면서요.


▶맞습니다. 우리 주교님 전에는 외국인 주교님이셨잖아요. 그러다가 그때는 신부님들을 해외로 유학을 잘 보내지 못했어요. 그랬는데 주교님 오셔서 처음으로 신부님 중에서 유학을 보내주고 그 후로 많은 분들을 유학을 보내셨는데 그냥 단순히 유학만 보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유학을 보내시면 반드시 그분이 묵을 숙소 이런 것들을 우리 춘천교구가 가난한 교구이다 보니까 주교님께서 직접 가셔서 수도회 장상이나 이런 분들을 만나서 사정을 다 얘기하고 우리 교구의 신부님 한 사람을 받아 달라 해서 그 수도회의 좋은 기숙사 이런 데를 연결해주셔서 또 주교님이 워낙 외국을 많이 다니시기 때문에 주교님이 가면 꼭 그 유학 중인 신부님들 찾아가서 밥도 사주고 격려도 하고 공부는 어떻게 하냐. 지도교수 만나서 얘기도 들어보고 하면서 정말로 각별하게 유학가신 신부님들을 챙겼기 때문에 그 신부님들이 모두 다 주교님에 대해서 고마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또 여러 나라에서 유학을 하셨고 또 고생도 해보셨고 하니까요.


▶그리고 평신도들을 위해서도 `명도 학당`이라고 우리 춘천교구의 자랑인데 2000년 대희년을 맞으면서 `명도 학당`이라는 평신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셨는데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평신도들 150명 정도가 저녁에 오셔서 학기별로 강의를 듣는데 그 강의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해서 그 강의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어요. 서울에서 유명하신 신부님들도 오시고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관해서는 우리 장익 주교님이 유학할 때 지도 신부님이 거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잘 아시니까 주교님께서 직접 강의를 하셨어요. 그 정도로 `명도 학당`을 키우셨는데 지금도 평협에서 그걸 이어받아서 지금은 평협에서 좋은 프로그램으로 발전해서...


▷지금 춘천 평협뿐만 아니라 서울도 마찬가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관한...


▶그것하고 다른 성경에 관한 것하고 다양하게 그때그때 평신도들이 원하는 수요가 있는 주제를 정해서 학기별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영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지금도 마련하고 있는데 다 주교님께서 씨를 뿌리고 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렇군요. 또한 고인께서는 `성서백주간`을 한국에 도입한 장본인 아니십니까?


▶주교님께선 굉장히 열정적이셨던 것 같아요. 주교님께서 일본에서 아주 좋은 성경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듣고 그걸 만드신 신부님이 프랑스 신부님이신데 그 신부님을 만나러 일본에 가셨어요. 가셔서 우리 장익 주교님 프랑스어도 잘하시니까 그 신부님하고 충분히 얘기를 나눠서 어떤 건지 알았고 좋으니까 본인이 그걸 가져와서 한 게 아니라 그 프랑스 신부님을 모셔다가 우리 한국에 그 당시에 성경에 관심이 있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한 100여 명 가까이 초대해서 듣도록 하셨고요. `성서백주간`이라는 것은 성경 신구약을 전체를 읽는 건데 약 한 3년 정도 걸리거든요. 정확하게는 백주간이 아니라 백이십주간인데 그냥 명칭을 백주간이라고 하는데 방학까지 끼면 뭐 1년 반, 3년 정도 가까이 걸리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 백주간은 성경을 공부하는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정해진 범위를 읽으면서 자기가 생각나는 묵상을 하고 그걸 삶에 비추어서 묵상하고 묵상한 내용을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7, 8명 되는 그룹원들이 서로 묵상한 내용을 나누고 같이 기도하고 그런 게 성서백주간이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주교님께서 도입해서 이게 나온 배경이 사실은 일본에서 2차 대전에 패망해서 많은 일본사람들이 귀국했고 그 사람들이 힘들 때 신부님이 선교를 해서 영세도 주고 했는데, 보니까 영세를 받기는 하는데 신앙생활이 잘 이어지지 않으니까 이게 문제가 있다. 왜 그럴까. 해보니까 이 신부님이 판단하기에는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만든 게 성서백주간이죠.


▷그런 장익 주교님의 말씀의 씨앗이 하느님 말씀의 생활화로 교회를 풍성하게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지금 서울이나 인천, 의정부, 수원, 춘천교구 이쪽으로는 굉장히 `성서백주간`이 잘 퍼져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지도 신부님들도 다 계시고요.


▶제가 보기에는 주교님의 업적이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뽑을 수 있는 게 `성서 백주간`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고 보급했다는 게 제일 큰 업적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교구장직 은퇴 후에 원로 주교로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굉장히 소박하셨죠. 늘 그랬었지만 현직에 계실 때보다도 시간적 여유도 있으시고 그랬지만 소박하게 지내시지만 주교님이 워낙 외국에 아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외국분들이 늘 공소를 찾아오셔서 인사드리고 나누고 수녀님들도 찾아오고 제자, 여러 분들이 찾아와서 환담하고 얘기하는 그런 것들이 큰일이었고 계속해서 저희들한테 제가 자주 만나니까 뭐 좋은 거 있으면 전화해서 오라고 해서 가보면 줄 거 이렇게 챙겨주시고 그리고 2년 전에는 우리 주교님께서 유학했던 오스트리아 지역에 아주 훌륭한 주교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책을 돌아가셔서 유고를 남기셨는데 그걸 모아서 번역했어요. 독일에서 나온 책인데. 그래서 그 책을 번역을 하는데 나이가 80이 넘은 주교님께서 그걸 번역하시느라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서 저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 참 소박하시면서도 저런 면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셨군요. 고 장익 주교님께서 하느님 품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함께 기도드리고요. 춘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임용순 그레고리오 회장과 말씀 나눴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원문보기: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784936&path=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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