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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초석 닦고 성장시킨 ‘신앙의 아버지들’
춘천 죽림동주교좌본당 설립 100주년 학술 심포지엄 개최… 구인란·박토마스 주교 발자취 돌아봐


2020.06.28 발행 [1570호]



춘천교구 제2ㆍ4대 교구장 구인란(Thomas F. Quinlan, 1896~1970) 주교와 제5대 교구장 박토마스(Thomas Stewart, 1925~1994) 주교는 한국 교회는 물론, 춘천교구의 설립과 기틀을 굳건히 하는 데에 나란히 헌신한 주역이다.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본당(주임 홍기선 신부)은 올해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21일 교구 교회사연구소(소장 김주영 신부) 주관으로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두 교구장 주교가 교구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봤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사제였던 구 주교와 박 주교는 각각 일제 치하의 설움과 한국전쟁의 고통을 견디고, 교구가 신앙적 기틀을 갖추고 성장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구인란 주교 -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성당 재건축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신자들이 있는 이곳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춘천에서만 6만여 명이 피란길에 올랐지만, 당시 춘천지목구장 구인란 몬시뇰은 피신을 한사코 거절했다. 신자들을 위해서였다. 춘천이 지목구로 설정된 지 10년 만에 급작스레 터진 전쟁에다, 새로 짓기 시작한 죽림동성당도 1년 만에 포탄에 무너진 상황이었다. 거기다 1945년 3·8선 설치로 지목구민의 3분의 1인 3000여 명을 북녘에 두게 되는 위기까지 맞았다. 춘천에 남았다가 포로로 잡힌 구 몬시뇰은 고산과 중강진, 평양 등지로 3년 넘게 ‘죽음의 행진’에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물 한 모금조차 먹기 힘든 극한의 상황 속에도 구 몬시뇰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놀랄 만큼 이기심이 없는 영웅적인 사람”으로 기억했을 정도로 한국인들을 성심껏 챙겼고, 수용소에서도 몰래 수도자, 신자들과 고통 속에 묵주기도를 함께 바친 인자한 아버지였다.

석방 후 1955년 주교품을 받고, 춘천대목구장으로 복귀한 구 주교는 1958년 이후 교구의 기틀을 다시 다잡기 시작했다. 가장 시급한 성당 건축을 위해 구 주교는 지목구장 시절부터 골롬반회 본부 등의 도움을 얻어 성전 건립에 힘썼다. 특히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죽림동성당을 1956년 다시 재건했으며, 성전 건축으로 신자와 지역민들에게 ‘하느님의 보호’ 아래에 있다는 인식을 전파했다. 죽림동을 비롯해 원동ㆍ임당동ㆍ횡성ㆍ성내동성당 등 그가 건립한 성당과 공소만 40여 곳에 달했고, 30여 년 교구장 재직 동안 교세를 성장시키며 1965년 원주교구를 분리시켰다. 성 골롬반 의원과 춘천 성심여대 등을 건립하며 의료 및 교육 사업에도 힘썼다.

구 주교의 업적을 발표한 여진천(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이날 발제에서 “수년 동안 이뤄놓은 사목 상의 성공은 구 주교의 성덕과 열성, 아버지다운 격려와 지도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전했다.


박토마스 주교 - 행복한 가정운동 추진·낙태 심각성 알려

구 주교의 뒤를 이어 1966년부터 춘천교구장을 맡은 박토마스 주교는 전교 회장 및 교리교사 자격시험 실시부터 이웃 종교와의 화합, 학교법인 상지학원 설립 등으로 도내 학교 교육에까지 힘을 쏟았다. 또 한국인 사제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해, 그가 교구장이 된 이후 약 10년 사이 교구 한국인 사제 수가 23명으로 늘었다.

박 주교가 가정 복음화와 생명 존중 사상을 널리 전하고자 시작한 ‘행복한 가정 운동’은 정부가 추진하던 인구 억제 정책에도 영향을 줬고,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공 유산과 무분별한 낙태 행위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는 1987년 전국 교구 가운데 처음으로 ‘가정사목부’가 설치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교구 복음화 운동을 비롯해 1982년 춘천교구에서 처음 열린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 기념 전국 신앙대회’ 등을 성황리에 개최하는 등 교구 공동체가 크게 성장하는 기틀을 구축했다. 박 주교는 주말마다 성당을 방문해 주일 미사를 주례하며 신자들과 대화하고, 본당 사목위원과 신심 단체장, 교리교사들이 활발히 활동하도록 끊임없이 격려했다.

이원희(요셉피나)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박 주교님은 공업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 생명의 존엄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실천하는 등 변동의 시기를 겪던 교회 안에 큰 역할을 수행하셨다”며 “지역사회 원조는 물론, 재임하던 시기 동안 총 53명의 한국인 사제를 양성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죽림동주교좌본당은 은총의 100년 본당 역사를 담은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본당 100년사」를 발간하고, 19일 발간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원문링크: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81960&path=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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