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교황 성 이냐시오 축일 미사 강론

2013731일 로마 예수(Gesu) 성당

 

* 우리말 및 영어 번역, 이진현 - [ ] 안은 의역 혹은 추가

 

우리의 사부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을 기념하는 이 미사에서, 우리가 들은 독서 말씀에 비추어, 세 가지 표현들에 따른 세 가지 단상들을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와 교회를 중심에 놓으십시오.

2. 그 분께 사로잡혀 그 분을 섬기십시오.

3. 우리 자신의 한계와 죄들을 부끄럽게 여기십시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In this Eucharist we celebrate our Father Ignatius of Loyola, in the light of the readings we heard, I would like to propose three simple thoughts guided by three expressions: put Christ and the Church at the center, let yourself be conquered by Him to serve; Feel the shame of our own limitations and sins, to be humble before Him and to others.

 

1. 우리 예수회 문장 紋章 IHS "예수 인류의 구원자 Iesus hominum Salvator”에서 첫글자들을 모아서 만든 합일문자 (모노그램)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IHS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하나의 실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각 회원과 전체 예수회가 지녀야 할 그리스도 중심성으로, 이냐시오 성인이 [새로 창립한 수도회의] 기준점으로 삼기 위해 직접 예수의’ [벗들 Compagnia di Gesù]이라고 명명한 [이유입니다].

 

1. The coat of arms of us Jesuits is a monogram, the acronym of "Iesus hominum Salvator "(IHS).Each one of you can tell me: we know it very well! But this coat of arms continually reminds us a reality that we must never forget: the centrality of Christ for each of us and for the whole Society, that St. Ignatius did want to call “Jesus “to indicate the reference point.

 

더욱이 영신수련의 시작 부분에서도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라고 초대합니다(영신수련 6 참조). 이것은 우리 예수회원들과 전체 예수회가 흩어지면서”decentralized 동시에 언제나 그리스도를 더 크게, 언제나 하느님을 더 크게, 그 분을 가장 친밀하게 모시는 내적 인식을 먼저 앞세우는 것으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벗어나 어떤 비움 [kenosis, 자기 낮춤, 자기 포기]으로 향하는 것, 곧 자기 사랑과 자기 의지와 자신의 이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영신수련 189)

 

Moreover, even at the beginning of the Spiritual Exercises, puts us in front of our Lord Jesus Christ, our Creator and Savior (cf. EE, 6). And this leads us Jesuits and the whole Society to be “decentralized “to get in front of the "Christ more and more,”the “Deus semper maior “, l ' “intimior intimo meo “, which takes us out of ourselves continually leads us to a certain kenosis, to “get away from your love, will and interest “(SpEx, 189).

 

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인가?” 이것은 명백히도 우리 각자에게,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 아닐까요? 정말로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있는가?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려는 유혹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회원이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둘 때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첫 번째 독서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길을 걸으라고 계속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기 때문이다.”(신명기 30,16.20).

It is not up the question for us, for all of us: Christ is the center of my life ? [Do I] really put Christ at the center of my life? Because there is always the temptation to think that we in the middle. And when a Jesuit puts himself at the center and not Christ, it is wrong. In the first reading, Moses repeats with insistence to the people they love the Lord, to walk in his ways, “because He is your life” (Dt 30,16.20)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것은 또한 교회를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불꽃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또한 이 경우에도 즉 우리 예수회원들과 전체 예수회마저도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른바 흩어진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봉사하고 교회에 봉사합니다. 교회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배필이며 교계는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입니다. (영신수련 353 참조)

 

Christ is our life! The centrality of Christ is also the centrality of the Church: they are two fires that can not be separated: I can not follow Christ without the Church and with the Church. And even in this case we Jesuits and the entire company are not the center , we are, so to speak, " moved " , are at the service of Christ and of the Church, the Bride of Christ our Lord, who is our Holy Mother hierarchical Church (cf. SpEx, 353 ) .

 

교회에 뿌리내리고 교회에 기초를 둔 사람들이 되십시오.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것입니다. [교회와] 평행하게 가거나 [교회로부터] 따로 떨어진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탐구의 길이요 창조적인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변두리로 가는 것, 수많은 변두리로 가는 것입니다.

 

Be men rooted and grounded in the Church: so Jesus wants us. There can be no parallel or isolated paths. Yes, the paths of research, creative ways, yes , this is important : go to the suburbs , many suburbs.

 

이를 위해서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단 그것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 교회 안에 속한 창의력입니다. 속함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이 현실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고, 관대함과 순명의 정신으로 교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This takes creativity, but always in community, in the Church, with this membership that gives us courage to go on. Serve Christ is to love this concrete Church , and serve with generosity and spirit of obedience .

 

2. 이 이중의 중심성을 살아가기 위한 길은 무엇일까요? 바오로 성인의 체험을 살펴봅시다. 이는 이냐시오 성인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두 번째 독서에서 들었듯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완성을 향해 계속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필립 3:12).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 길 위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로욜라 성에서 [회심의] 사건을 겪었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혀라!"

 

What is the way to live this double centrality ? Let's look at St Paul's , which is also the experience of St. Ignatius. The Apostle writes in the Second Reading we heard: I continue my pursuit toward perfection of Christ " since I have been conquered by Jesus Christ" (Phil. 3:12). For Paul, he was made on the road to Damascus, to Ignatius of Loyola in his house , but the main point is the same: let yourself be conquered by Christ.

 

나는 그리스도를 찾고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먼저 나를 찾았고 그 분이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체험의 핵심입니다. 언제나 그 분이 먼저입니다. 스페인어에 이것을 잘 설명하는 딱 맞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그 분이 최우선이다 “El nos primerea” 언제나 그분이 먼저입니다. 우리가 도착하면 그 분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I'm looking for Jesus, I worship Jesus because He sought me before, because I was won over by him, and this is the heart of our experience. But He is first, always. In Spanish there is a word that is very graphic, that explains it well : He "primerea" to us, " El nos primerea ." He is the first, always. When we arrive, He has arrived and is waiting for us.

 

 

여기서 저는 [영신수련] 둘째 주간의 [그리스도] 왕국 관상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영원한 왕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나와 함께 일해야 한다. 고통 중에 나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영광 중에도 나를 따르게 하겠다.”(영신수련 95).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인격과 우리의 모든 노력을 이 왕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영원한 왕이신 온 세상의 주님에 대한 모든 봉사에서 더욱 헌신적이고 탁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일에 자신을 바칠 뿐만 아니라영신수련 96). 주님께 당신을 향한 더 큰 봉사와 찬미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그 분을 본받아 모욕과 멸시와 가난마저 감내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직 당신께 더 큰 봉사와 찬미가 되도록 온갖 모욕과 비난을 감수하고 모든 정신적, 현실적 가난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본받기를 원하고 바라며영신수련 98).

And now I would like to recall meditation on the Kingdom in the Second Week. Christ our Lord, King eternal , calling each of us saying: "Who wants to come with me to work with me, for following me in suffering, follow me in glory " (SpEx 95). To be conquered by Christ is to offer this King our whole person and all our hard work (cf. SpEx, 96); say to the Lord that you would do everything for his greater service and praise is to imitate him also in bearing insults, contempt , poverty (see SpEx 98).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순간 시리아의 우리 형제들을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라는 것은 언제나 내 앞에 있는 상황을 직면하라는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목표를 향해 (필립 3,14 참조) 진실하고 성실하게 물으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신수련 53).

But I think our brother in Syria at this time. Be conquered by Christ means to be always directed towards what lies in front , toward the goal of Christ ( cf. Phil 3:14) and ask with sincerity and truth : What have I done for Christ? What am I doing for Christ? What should I do for Christ? (cf. SpEx, 53).

 

3. 이제 마지막 요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루카 9:24-26). 예수회원의 부끄러움은 [무엇일까요?]

 

In the Gospel, Jesus tells us: "Whoever would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save it ... If anyone is ashamed of me ... " (Lk 9, 23 ) . And so on. The shame of the Jesuit...

 

예수님의 초대는 결코 그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적인 헌신으로 그 분을 믿고 그분께 의지하며 언제나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첫째 주간에서 이냐시오 성인이 알려주듯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무엇보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아주 인간적이고 고귀한 정서, 높은 데에 있지 않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우리의 무지, 그분의 전능하심과 우리의 나약함, 그분의 정의와 우리의 불의, 그분의 선하심과 우리의 사악함을 보게 됩니다. (영신수련 59 참조).

 

The invitation that Jesus does is not never ashamed of Him, but to follow him always with total dedication, trusting and relying on Him. But looking to Jesus, as St. Ignatius teaches us in the first week , especially looking at the crucified Christ , we feel that so human and so noble feeling that is the shame of not being up; we look to the wisdom of Christ and our ignorance , to his omnipotence and in our weakness , His justice and our iniquities , His goodness and our badness (see SpEx, 59).

 

부끄러워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분과의 끊임없는 연민의 대화에서 나오는 부끄러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얼굴 붉어지는 부끄러움, 나를 위해 죄를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마음에 동화되는 부끄러움, 눈물로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는 부끄러움, ‘내 주님을 매일같이 따르는 데에서 올라오는 부끄러움입니다. [부끄러움]은 언제나 우리 회원 각자과 전체 예수회를 겸손으로 이끌어 커다란 덕행으로 살게 합니다. 이 겸손은 우리 자신이 아닌 언제나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은총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우리를 매일 깨어있게 합니다. 이 겸손은 우리의 이상이나 우리의 과업이 아닌,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봉사에 우리의 모든 것을 헌신하도록 재촉합니다. 이것은 마치 깨지기 쉽고 조악하고 미숙한 질그릇이지만 그 안에 우리가 나르고 전달할 엄청난 보물이 담겨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고린 4:7)

 

Ask for the grace of shame , shame that comes from continuous conversation of mercy with Him; shame that makes us blush in front of Jesus Christ ; shame that puts us in tune with the heart of Christ who became sin for me ; shame that puts our hearts in harmony in tears and accompanies us in the following daily " my Lord." And this brings us , as individuals and as a company , to humility , to live this great virtue . Humility makes us aware every day that we are not to build the Kingdom of God, but it is always the Lord's grace at work in us; humility that leads us to put everything ourselves not in our service or our ideas, but in the service of Christ and of the Church , such as clay pots , fragile , inadequate , insufficient, but where there is an immense treasure that we carry and we communicate (2 Cor 4,7).

 

저는 늘 예수회원의 황혼기를 생각하기 좋아합니다. 한 예수회원이 자기 삶을 마무리할 때, 그의 인생이 저물 때, 죽음을 앞둔 예수회원은 저에게 늘 두 가지 이미지를 선사합니다. 하나는 고전적인 것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프란체스코 사베리오 성인의 이미지입니다. 미술에서는 이 사베리오 성인의 마지막 순간을 상징하는 이 석양을 그린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문학에서는 Pemán의 아름다운 단편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주님 앞에 서는 것; 저에겐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I always liked to think of the Jesuit at sunset , when a Jesuit ends his life , when it sets . And I will always be two icons of this sunset of the Jesuit : a classic , that of St. Francis Xavier, watching China. The art has painted so many times this sunset , this final Xavier. Even the literature , in that beautiful piece of Pemán . In the end, with nothing, but before the Lord, that to me is good , think about this .

 

다른 석양, 나에게 본보기로 다가오는 또 다른 이미지는 난민 수용소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아루페 신부님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 말씀 그대로 직접 인용하면 - “저의 마지막 노래인 것처럼 말씀 드립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고 비행기에 오르셨는데 [뇌졸증으로] 쓰러진 채 로마에 도착하십니다. 그것은 아주 길고도 아주 모범적인 황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The other sunset , the other icon that comes as an example , is that of Father Arrupe last interview in the refugee camp , when he told us - something that he himself said - "I say this as if it were my swan song: pray. The prayer, union with Jesus", having said this, he took the plane , arrived in Rome with the stroke, which gave rise to that sunset so long and so exemplary.

 

[사베리오 성인과 아루페 신부님의] 황혼기, 이 두 이미지는 우리 모두에게 잘 바라보도록 그리고 이 두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초대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황혼기가 그들처럼 되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Two sunsets , two icons that all of us will do well to look, and go back to these two. And ask for the grace that our sunsets are like theirs.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성모님를 바라봅시다.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잉태하셨고 교회가 첫발을 디딜 때 함께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삶과 사도직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중심에 두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의 첫제자이자 가장 완벽한 제자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어떤 상황에서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을 섬기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모님은 천사의 알림에 가장 깊은 겸손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성모님은 우리에게 맡겨진 보물 앞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Dear brothers, let us turn to Our Lady, she who brought Christ in her womb and has accompanied the first steps of the Church, help us to put at the center of our lives and our ministry of Christ and his Church; She who was the first and most perfect disciple of her Son, help us to leave conquered by Christ to follow him and serve him in every situation ; She who responded with the deepest humility Annunciation: "Here am I, the servant of the Lord; let it be with me according to your word." (Lk 1:38) She makes us feel shame for our inadequacy before the treasure that was entrusted to us, to live humility before God.

 

우리의 여정에 사부 이냐시오 성인과 모든 예수회 성인들의 전구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그분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겸손하게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우리를 이끌어주기를 빕니다.

 

Accompany our journey the paternal intercession of St. Ignatius and the Jesuits of all the Saints, who continue to teach us how to do everything, with humility, to the greater glory of God.

 

성 이냐시오 축일 - 교황님 강론.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공지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을 실시간으로 보며 기도하기 2013-07-12 10589
413 교황님과 함께 삼종기도(8월 11일) file 2013-08-12 1228
412 라마단 교황 서한 file 2013-08-06 1283
411 삼종기도-베드로 광장(2013,08,04) 2013-08-04 1272
410 성모 승천 대축일 15일 기도의 전통 file 2013-08-03 1745
» 프란체스코 교황 성 이냐시오 축일 미사 강론 file 2013-08-03 1999
408 교황님의 한국 방문 file 2013-08-03 1831
407 강우일 주교님의 좋은 글 file 2013-07-31 1247
406 Black Bag file 2013-07-31 1632
405 가방든 교황님과 리오 해변가 고해성사 집전 교황님 file 2013-07-30 2069
404 세계 청년 대회 파견 미사 file 2013-07-29 2360
403 십자가의 길 특별손님 - 세계 청년 대회 file 2013-07-28 1898
402 게이들의 결혼 file 2013-07-27 2340
401 조용한 혁명 - 지금 리오에서.... file 2013-07-26 1462
400 리오 - 세계 청년 대회 개막 미사 2013-07-24 1880
399 비행기 안에서의 기자회견 file 2013-07-23 12560
398 여기는 리오 file 2013-07-23 1205
397 교황님과 세계 청년 대회 file 2013-07-22 1843
396 스타니 슬라우 추기경 말씀 2013-07-18 1130
395 제28차 세계청년대회 주요예식 중계시간표 2013-07-17 1776
394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의 개요 2013-07-17 1269